TV에서 우연히 조율사 소개 접 하고
평생 직업으로 선택해 배움의 길로
악기점서 일하며 공인 자격증 취득
마흔에 대학 진학해 예술경영 전공
국내 1호 유학파 박성환 교수 사사
조율사로 첫 ‘대한명인’ 타이틀 얻어
“音 어긋나면 양념 잘못된 음식 같아
사람과의 관계도 꼭 조율해보세요”
그랜드피아노 덮개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고 의자에 앉는 남자. 지그시 눈을 감더니 모든 건반을 가볍게 또는 강렬하게 두드리며 소리와 진동,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여운까지 한 음도 놓치지 않고 달팽이관으로 빨아들인다. 마치 청진기를 들이대고 환자의 아픈 곳을 찾아내는 의사처럼. 88개 건반 음 상태를 샅샅이 살피는 그는 연주를 앞둔 피아니스트가 아닌 피아노 조율사. 한참을 씨름하며 마지막 건반까지 조율을 마친 얼굴에는 희열 가득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피아노 조율사로는 최초로 대한명인에 오른 김현용(52)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회장. 그를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조율된 피아노 음색이 만드는 환상적인 선율에 푹 빠져본다.
# 88개 건반 설계대로 리셋하는 ‘피아노 의사’
피아노 조율 1호 대한명인. 장류나 전통주 명인은 많이 들어봤지만 명인 반열에 오른 피아노 조율사는 처음이다. 생소한 분야인데도 그를 명인으로 인정한 걸 보니 높은 경지에 이른 특별한 재능을 지녔나 보다. 조율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보통 ‘조율-조정-정음’ 세 단계를 거친답니다. 건반은 인간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역대를 감안해 88개로 구성됐어요. 1번부터 88번 건반까지 원래 음대로 정확하게 맞춰주는 작업이 조율이죠. 이어 모든 부속품이 원래 설계된 수치대로 정상 작동하도록 밀리미터(mm) 단위로 정확하게 조정한답니다.”
조율과 조정은 도구를 이용해 맞추는 기계적인 작업이라면, 정음은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조율사의 예민한 청각세포와 노하우가 빛을 발한다. “양모로 만든 건반 해머는 보통 여름이 되면 습기로 축축해지면서 음색이 어두워져요. 이를 다시 맑고 밝은 깔끔한 소리가 나도록 음색을 다듬는 작업이 정음입니다. 반대로 건조할 때는 거칠거나 깨지는 소리가 나죠. 이땐 해머를 샌딩하는 파일링, 강한 소리를 부드럽게하는 리들링 작업 등을 통해 음색을 부드럽게 만든답니다. 연주 공간의 특징이나 연주가의 개성에 따라 음색을 바꾸기도 합니다. 아, 조율사의 일이 하나 더 있네요. 고장 수리도 해요. 부속을 교체하거나 칠도 직접 하죠. 하하.”
듣고 보니 피아노 조율사는 연주자의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필수 과정인 것 같다. 안 그래도 예민한 연주자들 입장에선 피아노 음 하나라도 미세하게 어긋났다면 연주 내내 신경이 쓰여 제대로 된 연주가 어려울 테니 말이다. 더구나 다른 악기와 달리 피아노는 연주 도중 조율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피아노 조율 없이 진행되는 연주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 회장은 조율 상태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을까. “가끔 TV를 보다 조율이 완벽하지 않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 버리죠. 마치 양념이 따로 노는 맛없는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듣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귀에 거슬린답니다.” 현장도 아니고 TV로도 조율 상태를 알 수 있다니 역시 명인답다.
# 외롭게 기타 치던 소년, 피아노 조율에 빠지다
피아노 조율사는 아직 생소한 직업이다. ‘피아노 의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 청소년기에 그는 영혼이 많이 아팠다. 아버지의 심한 ‘주사’ 때문이다. 부친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밥상이 ‘휙휙’ 날아다녔다. 더구나 1남 5녀 중 셋째로 남자는 혼자여서 누나들과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단다. 도서관으로 대피했지만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런 질풍노도 시절을 지탱해준 친구가 바로 기타. “고1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세고비아 기타가 있더군요. 줄을 한 번 튕겨보고 싶었는데 친구가 생일선물로 받았다며 못 만지게 해요. 씁쓸했죠. 그 길로 용돈을 모아 경기 성남의 한 악기점에서 2만8000원짜리 기타를 샀는데 1∼2년 만에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어 저도 놀랐답니다.” 김 회장은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부친이 그에게 선물 하나를 남겼다. 바로 ‘음악 DNA’이다. 키가 185cm로 훤칠하고 인물 좋아 인기 많던 부친은 고향 마을 풍물패에서 꽹과리를치며 패를 이끄는 상쇠를 잡았다. 부친의 음악 재능이 김 회장에게 저절로 심어진 모양이다. 기타를 잡으니 노래도 부르고 싶어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피아노 조율사의 세계를 만난다. “KBS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에 조율사가 소개됐어요. ‘땅땅’하며 조율하는 소리가 제 심장을 마구 ‘쿵쿵’ 치더군요. 피아노조율학원 원장이 조율사 직업에 잘 맞는 세 가지를 소개하는데 딱 저예요. 음악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며, 더구나 학력 차별도 없다는 얘기에 눈이 번쩍 띄었죠. 여기에 리포터가 고수익이 가능한 유망 직종으로 소개해 딱 1분 만에 평생 직업으로 조율사를 선택했죠.”
2대 독자여서 6개월 군복무를 마친 그는 서울 천호동 국제피아노조율학원에 등록해 수업을 받았다. 학원비는 집에 손 벌리기 싫어 자주 들르던 성남의 악기사에 기타 강사로 취직해 받은 돈으로 조달했다. 또 서울 종로의 낙원상가 악기점에서 일하며 닥치는 대로 현장을 뛰어 조율은 물론이고 당시 유행하던 유광 피아노 도장 수리 기술까지 1년 반 정도 현장 일을 배운 뒤 조율사의 길로 본격 들어섰다.
# 피아노 조율 1호 대한명인 반열 오르다
리포터 말대로 조율사로서의 첫걸음은 경쾌했다. 조율 공부를 처음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3년 국가공인 피아노조율기능사 자격을 취득했고, 대졸자 대기업 초급이 40만원 정도이던 시절에 3배를 더 벌었다. 집집마다 피아노가 있을 정도로 피아노 산업이 호황인 것도 한몫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가 밀려왔다. “성남의 피아노 대리점에 취직해 10여년 동안 근무했는데 대리점에선 자격증이 필요 없더군요. 사장은 조율사 일보다는 피아노를 한 대라도 더 많이 팔기를 원했죠. 그러다보니 내가 피아노 운반 직원인지 영업맨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왔어요. 고민 끝에 퇴사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2002년 경기 용인 풍덕천사거리에 악기매장을 냈답니다.”
다행히 전공자와 대학 교수 및 강사, 연주홀, 대형 교회에서 조율 의뢰가 물밀듯이 들어왔고,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 연주홀 피아노 조율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격증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그랜드피아노 풀 사이즈까지 유지·보수·조율할 수 있는 국가공인 피아노조율 산업기사를 2004년에 취득했다. 유명 지휘자인 정명훈과 ‘동양의 파바로티’ 테너 조용갑 등 전통 클래식 연주자부터 그룹 코리아나 멤버 홍화자, 영화배우 박준규, 드라마 ‘전원일기’의 탤런트 김지영, 뮤지컬 배우 박혜미, 작곡가 김형석 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의 피아노가 김 회장의 손길을 거쳐 갔다. 지금도 KBS 아트홀 전담 조율사로 8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며, 총신대학교와 음악 인재 등용문으로 유명한 서울실용음악학교, 서울 신당동 공감홀 등을 전담한다. 뒤늦게 마흔 살에 대학 예술경영학과에 진학해 대학에 못 간 한도 풀었다.
김 회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피아노 조율을 공부한 조율 분야 대가인 국내 1호 유학파 박성환 교수를 2005년 직접 찾아가 사사하면서 명인으로 가는 디딤돌을 밟게 된다. “조율 개념이 완전히 달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고 봐야죠. 국내에선 보통 조율 평균율을 기초로 조율할 때 완전 4도, 5도 조율법을 사용해요. 유럽 조율 방식은 장 3도, 6도에 기반을 두고 완전 4도, 5도를 섞죠. 이러면 좀 더 명확하게 튜닝돼 화성이 훨씬 풍성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굉장히 정비례한 아름다운 음으로 들립니다.” 김 회장은 이후 유럽 방식의 튜닝을 사용하는데 전문 연주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는 이런 경력과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최초의 피아노 조율 대한명인으로 선정됐고 최근 자서전 ‘내 인생의 오케스트라’도 펴냈다.
# 인생도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사는 절대 음감이 필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김 회장은 “한 음을 듣고 다른 음을 튜닝하는 방식으로 한 음씩 쌓아 올라가며 상대음감으로 조율하기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전국 피아노조율경기대회에 12살짜리 초등학생도 출전했을 정도다. 다만 최근에는 피아노, 성악, 실용음악 등 전공자 지원이 많이 느는 추세다.
김 회장은 지난 1월부터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회장까지 맡아 어깨가 무거워졌다. “현재 전국 20개지부에서 탄탄한 기술을 지닌 정회원 60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한 전국 조율사는 약 25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회원들은 삼성문화재단 후원으로 1년에 10명 정도 독일, 일본, 중국 등에서 연수를 받아 조율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답니다.” 그는 앞으로 ‘피아노의 날’ 제정과 협회 전용 아트홀 건립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인터뷰하다 보니 문득, 한영애의 노래 ‘조율’이 떠오른다.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그 노래. 피아노 조율처럼 우리네 인생도 연주하기 전 처음의 음색대로 조율이 된다면 앞으로의 삶은 더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김 회장은 충분히 가능하단다. 그가 틈틈이 공부하면서 딴 자격증이 무려 40여 개. 국가공인 칠 도장기능사, 목공기능사 등 조율사 일과 관련된 자격증도 있지만 음악심리상담사, CS강사 1급, 스피치, 보이스컬러 등 자신을 조율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율하는 데 필요한 자격증도 많다. 특히 독서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딴 뒤 특허 낸 1080CR독서법 마스터로도 온라인에서 활동 중이다. 잊지 못할 경험 때문이다.
“한번은 조율하러 가정집을 방문했는데 피아노 뚜껑을 도끼로 내려찍은 자국이 선명해요. 아들이 공부 안 하고 피아노만 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아버지가 도끼로 찍었다는 거예요. 수리를 마치고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눴죠. 저도 기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아들한테는 친구 같은 피아노인데 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설득했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부자관계가 다시 좋아졌답니다.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기 전에 내 인생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꼭 조율 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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