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조직 개편에서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교섭권을 두고 전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상 기능의 이관을 둘러싼 두 부처의 신경전이 과열되면서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양측의 비난전을 공개 경고하고 나섰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30일 오후 서울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에서 통상 기능을 둘러싼 외교부와 산업부 사이의 마찰과 관련해 “표명할 입장이 없다”면서도 “큰 틀에서 인수위가 검토하는 이 상황에서 개별 부처에서 공개적인 발언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통상교섭권을 두고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는 외교부와 산업부 간의 힘겨루기에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두 부처의 신경전은 최근 논리 대결을 넘어 직접적 비난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외교부는 전날 미국 정부 고위 관료가 이달 중순 산업부가 가진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한국경제 보도와 관련, 산업부를 겨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산업부가 새 정부의 조직 개편에서 통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 정부의 입장까지 왜곡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전날 밤 11시10분쯤 기자들에게 배포한 메시지에서 “우리 국익과 국격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소위 타국 정부 ‘입장’으로 왜곡하여 국내 정부 조직 개편 관련 논리로 활용하려는 국내부처의 행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을 등에 업고 국내 정부 조직 개편 논의에서 이기려는 행태를 보이면서 과연 앞으로 타국을 상대로 떳떳하게 우리 국익에 기반한 교섭을 수행해 나갈 수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외교부의 메시지는 한국경제 기사에 대한 입장이었지만 사실상 산업부를 직격한 것이다. 기사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외교부가 이 기사의 출처를 산업부로 단정하고 입장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날 산업부도 한국경제 보도에 대해서는 설명자료를 내고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산업부는 통상 업무의 이관 여부 문제에 대해선 이날까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 문제는 인수위에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조직 형태가 유지돼야 한다는 게 산업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전윤종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이날 서울 모처에서 열린 ‘제2차 FTA 전략포럼’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세계적 공급망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산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우리 핵심전략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확보하는 통상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공급망, 기술경쟁, 디지털, 탈탄소 등 신통상 이슈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국가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거버넌스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을 위한 호기로 활용하고 공급망 위기 시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는 통상정책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통상과 산업의 연계 강화를 통한 전략 산업동맹을 구축하고 자원확보, 개발협력과 연계해 핵심 원자재 수입 다변화 국가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통상 거버넌스의 요건으로 ‘통상교섭과 함께 산업, 자원, 에너지 등 전문성 융합’을 제시하면서 “신통상 추세에 역행하는 외교통상형으로의 환원은 퇴행”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최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도 ‘산업정책과 일체화된 통상전략’을 강조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 긴박한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조직 개편은 불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산업통상형 조직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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