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전면 해체 vs 확대 개편.’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보수 성향의 여성 단체에서도 성 평등 주무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어떤 부처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할지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실행을 위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 토론회에서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기존 업무를 보건복지부 등으로 분산시킬 것인지, 오히려 복지부의 기능을 가져와 확대 개편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날 토론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실과 보수 성향의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 토론이지만 토론자들과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맞서 성 평등 주무 부처가 필요하고 독일처럼 청소년, 가족 정책까지 폭넓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여성’ 들어간 부처는 불필요, 여성 뺀 가족부로 개편
여가부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주무부처의 존재가 타 부서의 성 평등 정책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가부와 (여성 관련) 업무가 겹치지 않아야 해서 다른 부처들은 포기하고 여가부만 외로운 투쟁을 하게 된다”며 “여성정책은 종합 정책 기능 속에서 어우러져야 하는데 (예산이 적은 여가부만) 따로 떼어낸다면 효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관리하고 여가부가 맡고 있던 청소년·가족 업무는 보건복지부로, 성범죄 등 일부 업무는 법무부로 이관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가부에서 ‘여성‘을 빼고 가족부를 신설해 당면한 저출산, 자살률, 인구 감소 문제 등을 다루자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UN의 양성불평등지표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고(평등에 가깝다는 의미) 여성이 불평등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성인권만을 외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인구정책, 자살방지, 아동학대방지 정책과 두툼한 가족지원 정책을 담당하는 ‘가족부’로 개편하자”고 말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현재의 여가부에서 여성을 빼고 미래가족부로 재출범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평등 정책은 성평등위원회에서 담당하게 하고 무게중심을 성 평등이 아닌 가족과 인구 문제에 둔 부처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가부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기존의 여가부 산하의 수많은 이익단체가 국고지원을 받는 것과 이를 횡령하거나 유용해도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주무부처 없으면 성 평등 정책 소홀 우려
한편 전문가들은 성 평등 문제를 다루는 독립부처가 없으면 여성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역임했던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는 “현재 보건복지부는 자체 업무만으로도 매우 비대한 상황인데 여가부의 기능을 복지부 등으로 이관하게 되면 ‘곁다리’ 업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 평등 분야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두겠다는 방안에 대해서도 “인수위가 불필요한 위원회들을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새로운 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여가부가 다양한 사회 문제에 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존 여가부 업무에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던 성 평등 일자리 정책 등과 복지부에서 담당하던 가족, 돌봄 문제를 가져와 지금의 여가부를 성평등가족청년부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은 “여가부는 아이 돌보미, 경력단절 여성지원, 학교 밖 청소년지원 등 타부서에서 하지 않았던 사각지대 업무를 발굴해서 제도화한 성과가 있다”며 “다른 부처로 이관되면 이런 것들이 전부 뒷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이 전 차관은 “성폭력이나 가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업무는 성인지 관점이 필요한데 가해자 처벌에 방점을 둔 법무부로 해당 업무를 이관하게 된다면 피해자 권익 보호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산하 기관들이 주무부처가 없어지면 지자체나 기관들이 하나의 사업, 정책 등을 시행할 때 여러 부처에게 따로 보고를 해야 하는 등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일처럼 1장관 3차관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
한편 여성가족부 폐지의 대안으로 양성평등부터 가족 구성원들의 복지까지 관할하는 ‘독일식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연방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연방여성가족부)는 1장관 3차관(양성평등·저출생·복지) 체제로 △민주주의와 참여국 △가족과 디지털국 △인구변화와 사회복지국 △양성평등국 △아동청소년국 등 5개국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이런 독일식 모델을 인수위에 제안하기도 했다. 여가부가 성 평등뿐만 아니라 노인, 아동·청소년, 등 전반에 걸친 문제를 다루고 정책을 설계하도록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하나 베커 독일대사관 1등 서기관은 “독일은 16개 주와 협력해 매년 연방정부가 각 지방주의 양성평등 장관을 모아 연례회의를 하고 있으며, 각 지자체에도 양성평등담당관을 두고 있다”며 “연방여성가족부의 주요 업무는 임금차별타파, 여성 고위직 승진기회 보장, 일과 가정의 양립, 성에 대한 선입견 없이 직업을 선택하도록 장려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커 서기관은 “연방 여성가족부의 업무 분야가 상당히 포괄적”이라며 “여성의 권익뿐만 아니라 젊은 남성의 권익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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