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줄 갯수 늘려 저음역대 보완
꽹과리는 호두채로 바꿔 소리 줄여
그동안 31종 228개 악기 개량·개발
대량생산·자연재료 대체 연구 진행
대금은 합죽, 나각은 FRP로 제작
국악박물관서 15일까지 악기 전시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인데 국악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통 악기는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달라진 시대와 공연 상황에 맞춰 더 큰 울림을 만들며 최상의 소리를 내도록 개선되고 있다. 이 같은 국악기 개량에 앞장선 곳은 역시 국립국악원. 3일 국립국악원에 따르면, 1963년 10월 국악기개량위원회를 발족한 후 이듬해부터 1989년까지 네 차례 악기 개량 사업을 추진했다. 2006년 악기연구소를 열어 옛 악기 복원 등에 나서고, 올해는 국악기연구개발위원회도 발족했다. 1965년 서양 오케스트라 형식을 도입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 등 다양한 음악 환경 변화에 따라 국악기 음역을 넓히고 음량을 조절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악기 현대화에선 상대적으로 취약한 저음역대 보강이 절실했다. 윤권영 악기연구소 연구원은 “옛날엔 사랑방 등 작은 실내 공간에서 연주되던 국악기가 넓은 관현악 무대에 오르다 보니 한계점을 노출했다”며 “서양 악기는 현악기만 해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등 다양해서 풍성한 연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음역대가 넓은데 국악기 음역대는 (서양 악기) 중간 정도”라고 말했다.
그 결과,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고 개량된 국악기 중 현장에서 실제 활용되는 것은 손에 꼽히지만 그동안 31종 228개 국악기가 개량·개발됐다. 12현 가야금은 25현으로, 7현 아쟁은 9현으로 각각 늘려 저음역 표현이 가능해졌다. 원래 한 음만 내는 ‘나발’도 색소폰처럼 키를 달아 여러 음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대피리는 클라리넷 제작자와 손잡고 보조키를 통해 음역을 확장했고, 고음을 자랑하는 태평소에도 중저음을 내게 하는 키를 설치했다.
큰 공연장이나 야외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악기 음량 손질도 이뤄졌다.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 등 현악기의 몸체인 울림통을 키우고 소리를 밖으로 내보내는 공명혈 위치를 바꾸거나 개수를 늘렸다.
예컨대 개량 거문고는 보판을 이중으로 설계해 울림통을 키웠고, 현침을 위아래로 이동시켜 음을 낮출 수 있도록 했다. 가야금 현도 기존 명주실 대신 철로 만들어 음량이 커지게 했다. 특히 25현 가야금은 국악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음량이 작은 점을 보완하려 보판 높이를 15㎜ 더 키우고, 음량 확대용 받침대까지 만들었다. 공명혈에서 나오는 음이 반사판을 통해 관객들에게 뻗어 나가도록 가야금 음량을 두 번 증폭시킨 것이다. 해금도 나팔관 모양의 공명 장치로 음량을 키웠다.
반대로 소리를 줄인 악기도 있다. 꽹과리는 음량이 너무 커서 실내 무대에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악기였다. 탱자나무로 만드는 채가 워낙 단단한 게 큰 소리를 만드는 한 요인임을 감안해서 여러 실험 끝에 호두나무로 채를 만들어 소리를 줄였다.
또 보급형 국악기 등 대량생산을 위한 작업과 환경 변화로 점차 사라져 가는 자연 재료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졌다. 희귀한 쌍골죽(속이 꽉 찬 대나무)으로 제작해 온 대금은 대나무를 펴는 기술을 동원한 합죽으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나팔고둥으로 만들던 나각은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FRP)으로 각각 제작한 게 대표적이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악관현악단 연주에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국악기 저음을 보완하고 있을 정도로 중저음부를 담당할 (국악) 현악기 개발이 시급하다”며 “개발 과정부터 지휘자, 연주자들과 함께 논의해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된다면 실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오는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변화와 확장의 꿈’이란 제목으로 대표적 개량 국악기 40여점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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