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제주 폐가 ‘빈집재생프로젝트’로 생명력 얻어 예쁜 숙소로 변신/하천 바람집·월령 바당집·두모 옴팡집 원형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
마당 한가운데 놓인 감귤 나무 한 그루는 몸통 굵기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아이가 나고 자라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모든 날을 지켜봤을 테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자식들은 뭍으로 떠났고 세월을 견디지 못한 노부부도 이젠 없다. 주인을 잃고 수십 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된 폐가. 하지만 다행이다. 버려졌던 집이 하룻밤이라도 꼭 머물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예쁜 숙소로 화려하게 변신했으니.
#폐가에 생명력 불어넣는 빈집재생프로젝트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하천 바람집’에 들어서자 여기가 폐가였던 곳이 맞나 싶다. 럭셔리한 리조트 느낌이 물씬 풍길 정도로 잘 꾸며 놓아서다. 대문을 들어서자 붉은 화산석이 깔린 예쁘고 깔끔한 마당이 손님을 반긴다. 그 마당을 따라 놓인 현무암 디딤돌은 어른 2명이 한꺼번에 건너도 충분할 정도로 넉넉하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적당한 크기의 귤나무, 진입로 돌담은 제주스러운 멋을 한껏 잘 살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장독대와 우물까지. 부모가 살던 안거리와 자녀들이 살던 밖거리 두 동이 ‘ㄱ 자’로 놓인 건물 벽 역시 현무암 재질로 마감한 뒤 은은한 크림색으로 꾸몄고, 지붕은 옅은 파스텔톤 살구색으로 마무리해 튀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아늑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툇마루에 누우니 아담한 정원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그림이다. 집 이름처럼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름 열기를 식혀 주니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든다.
안으로 들어서면 더 놀랍다. 뒷마당을 담는 액자 모양 창을 냈고 거실 큰 창엔 정원이 가득 찼다. 지붕 서까래와 기둥을 그대로 살렸지만 모던한 조명과 화이트톤 벽으로 꾸며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지은 지 70년이 넘은 이 집은 10년 넘게 비어 있던 곳. 하지만 육지에 직장을 얻어 나간 주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집이고 언젠가는 자신이 돌아와서 살아야 하는 집이라는 생각에 팔지 않고 그대로 뒀는데 바쁜 직장 생활에 돌볼 시간이 없어 거의 폐가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방치되거나 버려진 집들이 제주에는 1만가구가 넘는다. 제주여행 통합예약플랫폼 ‘제주패스’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청년 창업 아이템 공모전에서 ‘빈집 프로젝트’로 수상한 스타트업 기업 ‘다자요’와 손잡고 이런 흉물스러운 폐가를 예쁜 집으로 다시 꾸미고 있다.
버려진 집들을 리모델링하는 빈집재생프로젝트다. 10년 동안 무상으로 빌린 폐가를 운치 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펜션으로 활용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집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집을 꾸미는 데 보통 2억∼3억원이 투자된다. 집주인은 예쁘게 바뀐 집을 선물받을 수 있고 업체는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상생하는 셈이다. 하천 바람집에는 인기 배우 류승룡이 제안한 콘셉트와 아이디어도 담겼다. 제주를 자주 여행하던 류승룡은 우연히 빈집재생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리모델링 초기부터 직접 참여했다. 그가 손수 만든 목공예품과 도자기, 기증품인 다기세트를 만나고, 서재에는 드라마 ‘킹덤’ 대본집과 그가 추천한 책들이 놓여 차 향기를 즐기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 좋다.
#제주 환경 살리는 여행 해 볼까
빈집재생프로젝트는 호텔처럼 싹 바꾸는 것이 아니다. 원래 있던 제주 전통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리고 여행자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인테리어를 한다. 현재 빈집을 리모델링한 곳은 하천 바람집, 월령 바당집, 두모 옴팡집 등 모두 3곳. 제주시 한림읍 월령포구 선인장 군락지 해안산책로 인근 월령 바당집에 들어서면 커다란 야자수와 선인장, 자갈로 마당을 꾸미고 돌담 콘셉트로 지은 하얀 집이 제주 바다와 한 몸으로 어우러진 풍경이 기다린다. 저 마당에서 그릴에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보내는 휴가는 그야말로 꿀맛이겠다.
홀로 지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100년 넘은 집의 삶도 멈췄지만 이제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를 가득 품은 월령 바당집으로 다시 태어나 여행자를 맞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침실에서는 세로 창을 통해 자갈 마당에 내리는 햇살과 빗방울, 눈송이를 즐길 수 있다. 2층 다락에 오르면 액자 같은 가로 창을 통해 월령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폴딩도어가 달린 프라이빗 풀까지 마련돼 문을 활짝 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휴식하기 좋다.
제주시 한경면 두모 옴팡집은 집터가 움푹 팬 모습이 아주 독특하다. 제주의 거친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효율적으로 바람을 막기 위해 처음부터 집을 ‘옴팡진’ 땅에 낮게 짓던 제주 사람들 지혜가 잘 담겼다. 성난 바람은 지붕 위로 흘려보내고 중정을 넓게 파 햇살은 창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며 별빛은 마당으로 쏟아지는 구조가 돋보인다. 역시 100년 넘은 집이다. 골목에서 보면 민트색 지붕만 살짝 보이고 돌담에 둘러싸여 있어 비밀의 공간에서 ‘옴팡지게’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제주패스와 다자요는 리모델링한 집들을 운영해 얻는 매출의 1.5%를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 앞으로 빈집 1000곳을 리모델링, 난개발을 막고 제주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작정이다.
이런 빈집재생프로젝트는 더 나은 제주를 만들겠다는 제주패스의 ‘메이크 제주 베러’(Make Jeju Better) 캠페인 중 하나. 제주패스는 그린 앰버서더 프로그램도 도입, 회원들이 예약 플랫폼을 통해 호텔과 렌터카를 결제할 때 금액의 5%를 적립해서 돌려주고 1%는 의무적으로 환경과 사회 문제 해결을 돕는 곳에 기부하도록 했다. 매출이 100억원이라면 1억원을 기부하게 되니 상당한 규모다. 연회비는 따로 없고 ‘제주를 살리는 좋은 여행자가 되겠다’는 서약만 하면 된다. 제주패스는 실시간 가격비교 렌터카 예약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기업. 제주패스 애플리케이션의 ‘카페패스’를 활용하면 커피와 다양한 음료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제주 인기카페 200여곳에서 사용하는 무제한 이용권은 3시간마다 기본 음료를 무료로 이용하고 다른 음료로 바꾸면 할인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어 카페 마니아들에게 제주를 좀 더 알차게 여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