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결국 사상 초유의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무섭게 치솟고 있는 물가상승세를 선제적으로 잠재우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한은은 다만 경기침체를 우려해 추가적인 빅스텝에는 선을 그으며 향후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시사했다. 고물가, 고환율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고금리의 그늘이 한층 짙어진 가운데 취약계층은 더욱 압박을 받을 것이란 예측이다. 세계일보는 13일 한은의 빅스텝 관련 뉴스를 주요 경제뉴스로 다뤘다.
◆사상 초유의 빅스텝, 물가잡기 초강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전원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국내외 경기의 하방 위험이 증대됐지만,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하고 광범위해졌다”며 “단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크게 높아지고 있어 당분간 고물가 상황의 고착을 막기 위한 선제적 정책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 또한 전례가 없다.
이러한 이례적인 결정이 나온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6.0% 뛰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7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일반인의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값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3.9%를 기록, 10년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하고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고인플레이션 상황이 고착된다면 향후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져 경제 전반은 물론, 취약 부문의 피해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빅스텝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물가가 3분기 말∼4분기 초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국내 물가 흐름이 현재 전망하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즉 향후 몇 달간 지금보다 높은 수준을 보인 후 점차 완만히 낮아지는 상황하에서는 금리를 당분간 25bp(1bp=0.01%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말 기준금리는 시장 예상대로 2.75∼3.0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빅스텝으로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 대출금리에 그대로 반영되면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3조4046억원 늘어난다. 이번 빅스텝을 포함해 지난 10개월간 기준금리가 1.75%포인트 뛴 만큼 이 기간 가계대출자 이자 부담은 24조원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총재는 한·미 통화스와프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다음 주) 만남에서 (외환시장 안정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빅스텝 배경은…경기침체 우려 추가 빅스텝 가능성 낮아
이례적인 이번 빅스텝의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월 금통위 당시 한은이 예상한 물가 정점 시기는 5∼7월로, 2분기가 지나면서 물가 상승세가 반환점을 지날 것으로 관측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빅스텝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 4.1%, 4월 4.8%, 5월 5.4%에 이어 6월 6.0%까지 오르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은은 지난달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며 물가 정점의 시기를 3분기로 제시했다. 4월 8.3% 이후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월 들어 오히려 8.6%로 반등하는 등 예상과 다른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이 총재가 제시한 물가 정점 시기는 3분기 말∼4분기 초로 조금 더 후퇴했다. 이 총재는 “한 달 전만 해도 110달러, 120달러까지 올랐던 유가가 다시 100달러 밑으로 떨어졌지만, 천연가스와 농산물 가격은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정점 후 급속히 떨어지지 않고 완만히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예상 시나리오대로라면 25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포인트)씩 추가 인상을 통해 연말 기준금리는 시장 예상에 부합하며 2.75∼3.00%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이 급격한 긴축 모드에 돌입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점도 빅스텝의 배경이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달 28년 만의 자이언트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한국(1.75%)과 미국(1.50∼1.75%)의 기준금리(정책금리) 격차는 0.00∼0.25%포인트로 줄었다.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면서, 일단 미국과의 격차는 0.50∼0.75%포인트로 벌어졌다. 하지만 연준이 이달 추가 자이언트스텝에 나선다면, 미국의 기준금리가 0.00∼0.25%포인트 높아지는 역전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원화 약세에 이어 수입 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 급등세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에 대해 “금리 역전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에도 금리가 역전된 경우가 세 차례 있었고, 단순히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느냐보다 자본·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답했다.
물가 잡기가 최우선 과제이긴 하지만, 이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도 한은의 큰 고민이다. 한은은 5월 당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2.7%, 내년 2.4%로 각각 제시했지만, 이날 전망은 올해 2%대 중반, 내년 2%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한은은 판단했다.
통화당국은 이날 출렁이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과 통화스와프 관련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오는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한과 관련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옐런 장관의 만남에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이번 방한에서 추 부총리와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갖고, 양국의 경제·금융 협력과 G20(주요 20개국) 등을 통한 정책 공조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한은을 찾아 이 총재와 글로벌 경제 상황 및 정책 공조 등에 관한 양자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더 커진 이자부담에 허리 휘는 취약층
한은의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으로 금융 취약계층에 가해지는 고통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년 남짓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동안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터라 서민층이나 소상공인일수록 그만큼 이자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가계대출 잔액을 기준으로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인상될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2020년 말과 비교해 6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출자 한 명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이자 부담이 289만6000원에서 321만9000원으로 32만2000원이 늘어난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지난 10개월간 1.75%포인트 금리 인상에 따른 1인당 이자 부담 증가액은 112만7000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가구 평균치인 만큼 취약층일수록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 등 금융기관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늘고 소비자에게 적용하는 금리도 함께 오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지난달 24일 기준 연 4.750∼6.515% 수준으로 지난해 말(3.600∼4.978%)과 비교해 올해 들어 6개월 새 상단이 1.537%포인트나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 지표로 주로 사용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가 미국의 강도 높은 통화 긴축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으로 2.259%에서 3.948%로 1.689%포인트 치솟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은이 올해 말까지 25bp(1bp=0.01%포인트)씩 추가 인상을 예고한 만큼 올해 말 기준금리가 2.75∼3.00%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이미 6%대 중반을 넘어선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상단은 올해 말 8%에 근접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경험하는 금리 수준이다.
사회적거리두기 강화로 피해가 집중된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의 상황도 시급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자영업자대출 잔액은 960조7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대비 2년 3개월 만에 40.3%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가계신용 증가율(16.2%)을 크게 웃도는 증가 속도다. 특히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가 오는 9월 말 종료를 앞두고 있어 정책 지원 종료와 상환 이자 급등 등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도 이날 취약층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 과정에서 어려움이 커지는 취약 부문에 대해서는 정부와 함께 중앙은행도 선별적 지원 방안을 찾아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코로나19 피해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 오는 9월 말 종료되더라도 현재 지원이 진행 중인 자금에 대해서는 최대 1년간 현행 0.25%의 금리를 유지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계 변동금리대출의 고정금리 전환 지원 등 가계부채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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