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오기·큰고니 등 1200여종 야생 생물 사는 자연생태계의 보고 / 세계 첫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 생명력 가득 ‘내 마음의 녹색융단’ / 합천영상테마파크 옛 경성 거리·전찻길···어, 영화속 그 장면 아냐? / 팜핑·캠핑 즐기는 합천 가야산 별빛농장엔서 파프리카 김밥 만들기
아주 고요하다. 깊은 정적을 깨는 것은 가끔 참방거리며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작은 몸짓과 짝을 찾아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귐뿐. 마치 녹차가루를 솔솔 뿌린 듯, 한여름 수풀은 물 위를 온통 뒤덮으며 녹색 융단을 깔았다. 그리고 신비로움을 더하는 물안개까지. 날것의 생명력 가득한 우포늪 앞에 섰다.
◆따오기 만나는 우포늪의 여름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 초등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보는 국민 동요 ‘따오기’. 철부지 어린 시절에도 감정선을 강하게 자극해 그 선율이 나이가 들어서도 절대 잊히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이던 1925년 아동문학가 한정동 선생이 지은 동시에 작곡가 윤극영 선생이 곡을 붙인 동요는 나라를 잃은 민족 감정을 노래한 것으로 간주돼 당시 금지곡이 됐다.
주로 소나무에 둥지를 트는 따오기는 이처럼 동요에도 등장할 정도로 한반도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예 멸종되고 말았다. 따오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8년. 중국 따오기번식센터에서 한 쌍의 따오기를 들여와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복원에 성공했고 이후 자체 증식으로 현재는 495마리가 우포늪을 훨훨 날아다닌다.
경남 창원군 유어면 우포늪길 우포늪생태관 입구로 들어서니 귀여운 따오기 조형물이 동심을 자극하며 여행자를 맞는다. 특별한 손님들이 우포늪을 찾았는데 정신지체아들이다. 자원봉사자들과 손잡고 우포늪 생명길 탐방에 나서는 그들의 얼굴엔 오랜만의 나들이가 설레는 듯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가 가득하다. 꾸미지 않은 자연은 그들을 밝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나 보다.
제1관찰대에서 우포늪 생명길 여행을 시작한다. 1.4㎞의 긴 대대제방을 따라 펼쳐진 우포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하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수생식물들은 앞다퉈 뽐내기 경쟁에 나선 듯, 늪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마름,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이 주인공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녹색의 융단을 펼친 듯 신비롭다. 그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다양한 철새들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풍경을 선사한다.
자연 생태계의 보고, 우포늪은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에 걸친 약 2.5㎢(약 76만평) 규모의 늪지성 호수. 1200여종의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천연기념물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조류 200여종, 멸종위기종 수달, 담비, 삵 등 동물 200여종에 달한다. 특히 청머리오리, 가창오리 등 멸종위기종이 우포에서 많이 발견되며 청머리오리는 전세계 개체군의 8%에 육박하는 많은 개체수가 우포늪에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쇠물닭, 물총새, 휘파람새,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알락할미새 등이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기 위해 남쪽에서 날아온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가시연꽃과 자라풀, 수염마름, 창포 등 식물도 800여종이 관찰된다.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3월 2일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고 2018년 10월 25일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최초로 ‘람사르 습지도시’로 인증됐다.
약 1억4000만년 전 낙동강 하류 지역 지반 침강으로 물이 흘러들면서 우포늪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습지 우포(소벌), 사지포(모래벌), 목포(나무벌), 쪽지벌과 복원습지 산밖벌로 이뤄진 우포늪은 규모가 워낙 커 하루에 다 둘러보기 쉽지 않다. 제1전망대와 숲탐방로1길까지만 다녀오는 가장 짧은 코스는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하다. 우포늪의 매력을 제대로 즐기려면 생태관∼대대제방∼사지포제방∼숲탐방로2길∼소목마을주차장∼숲탐방로3길∼목포제방∼모곡제방∼우포출렁다리∼산밖벌∼생태관 순환코스를 따라가면 된다.
걸어서 약 3시간30분 거리로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쉽지 않으니 단단히 준비하고 나서길. 대대제방을 둘러보고 산밖벌과 쪽지벌에 걸친 우포출렁다리를 거닐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포늪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출렁다리 인근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우포출렁다리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제3관찰대에 올랐다. 산밖벌과 쪽지벌, 토평천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인다. 쪽지벌을 가로질러 산밖벌과 모곡제방을 연결하는 출렁다리에 서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습지의 장엄한 풍경이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진다.
◆‘미스터 션샤인’ 만나러 합천으로 갑니다
합천은 창녕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 함께 여행하기 좋다. 합천에서 인기 높은 여행지가 용주면 합천호수로 합천영상테마파크. 192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 오픈세트장으로 웬만한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이곳이 촬영무대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비롯, ‘각시탈’ ‘태극기 휘날리며’ ‘택시운전사’ ‘암살’ ‘써니’ ‘강철비’ ‘비밀의 숲’ 등 영화, 드라마, 광고, 뮤직비디오 190여편이 이곳을 선택했을 정도로 세트장의 완성도가 높다. 달고나, 이화장 정식 등 추억 돋는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고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숙소도 마련돼 가족단위로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좋다.
입구에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포스터가 전시됐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동주’의 여러 장면은 벽화로 꾸며졌다. 일제강점기 건축양식으로 지은 가호역을 통과하면 드라마 ‘경성 스캔들’ 촬영 때 사용된 전차가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으로 이끈다. 조선 고종 때 서대문∼홍릉을 운행하던 전차를 복원했는데 ‘소공동 거리’의 동화백화점∼반도호텔 구간 경성 시내를 여행한다.
전찻길을 따라 시에론 레코드, 향미경양식, 살롱 그랜드, 최승자 미용실, 화신양상점, 동양극장 등이 이어져 영화의 한 장면 속을 거닐게 된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 대통령이 잠시 머무른 돈암장은 세월이 느껴지는 향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문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갈색 지붕이 독특한 적산가옥 거리가 펼쳐진다. 영화 ‘각시탈’의 많은 장면들이 이곳을 무대로 삼았고 드라마 속에서 악명을 떨친 종로경찰서와 수도경찰청 등도 만난다.
경성역을 지나 1960∼70년대 서울 거리로 꾸며진 드라마 ‘에덴의 동쪽’ 세트장에는 배재학당, 중앙우체국, 국도극장, 원구단, 한국은행, 대서양호텔, 대신백화점들이 등장한다. 분수대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건물은 장동건 주연의 영화 ‘마이 웨이’ 세트장인 일본식 료칸. 연꽃이 피는 아름다운 연못과 단풍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정원으로 꾸며져 산책하기 좋다. 료칸은 현재 숙박시설 ‘향원’으로 사용된다.
◆별빛농장서 캠핑하며 파프리카 김밥 먹어볼까
영상테마파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합천군 야로면 가야산 별빛농장은 캠핑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가족단위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가야산 자락 해발 400m 고지에 만든 별빛농장으로 들어서자 스마트팜으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거대한 유리온실이 펼쳐진다.
5만평 규모의 대단지에서 토마토, 바질, 새싹인삼 등 다양한 먹거리를 재배하는 별빛농장은 팜핑과 캠핑을 즐기는 복합 문화 농장. 등산, 황토 둘레길 걷기, 요가, 숲속 명상 등을 접목한 1박2일 ‘자연미행’ 프로그램이 마련돼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소진된 기운을 자연의 에너지로 다시 채우기 좋은 곳이다.
체험장으로 들어서자 손님들이 ‘가야산 여신’으로 부르는 이현주(57) 대표가 주방에서 반갑게 맞는다. 그가 만드는 요리는 국내 최초로 선보인 파프리카 샐러드 김밥. 합천에서 나는 돼지로 만든 수제햄, 양파, 감자가 들어간 파프리카 김밥의 알록달록한 단면이 식욕을 자극한다. 밥 없는 김밥이지만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 덕분에 한입만 먹어도 건강해지는 기분. 4인 가족 기준으로 재료가 준비되는 쿠킹 클래스는 파프리카 피자, 청란버거, 키토파샐 만들기 체험으로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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