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정책에 민감한 사회… 정권에 타격 줄 수 있어
밀어붙이기식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도 도마에
“누구 하나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정부만 원할 뿐이다.”
교육부가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전격 발표하자 교육계와 학부모, 시민단체, 학자 등의 반발이 전방위로 터져나오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가운데, 이번 학제개편이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낮은 정권의 발목을 잡을 조짐이다. 친정인 검찰 출신 인사들의 기용에서부터 사적 채용 논란, 경찰국 사태, 국민의힘 내홍을 거쳐 이번엔 교육정책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방식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선공개 후논의’… ‘일단’ 열어버린 판도라 상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직후 교육 일선에 있는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 분위기다. 학부모는 물론 교육 관련 시민단체와 일선 교사들까지 찬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1일 이번 교육부 학제개편 계획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 학부모들은 정책의 당사자인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년지대계’(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라는 교육 정책을 교육청이나 이해 당사자인 학부모들과 논의도 일절 하지 않은 채 전격 발표하고, 이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다.
가장 뿔이 난 것은 정부의 계획에 따라 조기 입학의 대생이 된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다. 성장기 아동 특성상 많게는 12개월 이상 차이가 나는 2018년생과 함께 2019년생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학업에서 뒤처지거나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많다.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초등학교 조기입학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 2009년 9707명이던 조기 입학은 2021년 537명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가 (성인기보다)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취학 연령 하향은) 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지만, 오히려 사교육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 등은 만 5세가 교육보다 보살핌이 더 필요한 나이로, 연령별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교육환경에 처하게 된 아이들이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학제개편을 강행하면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어 입시나 취업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 교육 정책에 민감… 정권에 타격 줄 수 있어
교육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특히 민감한 이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부정입학 의혹은 문재인 정부에 큰 타격을 줬고, 현 정부들어 부모 찬스 논란을 빚은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지부 장관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
정치권 뿐만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학교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한 사실이 알려져 곤혹을 치렀고, 이는 영훈국제중에 대한 감사 및 수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됐다.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 부모는 임신 때부터 아이의 대학교 입시를 준비한다고 할 정도로 관련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초등학교를 일찍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입시경쟁에 매달려 하는 하는 아이가 1년 먼저 태어난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부모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현재 여론은 논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반대가 거센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만 보면 찬성과 반대, 양측의 갈등이라는 표현을 달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는 뒤늦게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초등학교 취학 연령 개편안과 관련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경청해 정책에 반영하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한 총리는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의 찬반 의견과 고충을 빠짐없이 듣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정책 결정과 실행의 모든 과정을 교육 주체들과 언론에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라”고 당부했다.
◆밀어붙이기식 윤 대통령 스타일 도마
결국 이번 정책의 화살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국을 흔들었던 경찰국 사태와 사적 채용 논란, 문자 파동 등의 논란에 더해 연일 추락 중인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10 중 7명은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28%, ‘잘못하고 있다’는 62%였다. 특히 TK 지역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40%)보다 부정 평가(47%)가 높았고, 연령별로 60대(40%)와 70대 이상(48%)도 지지율이 50%에 못 미쳤다.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층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로 겨우 절반을 넘겼고, 중도층은 24%에 그쳤다.
특히, 이 조사에서 응답자 중 8%는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6%가 소통 미흡을 부정 평가 이유로 답한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6∼28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1.1%다.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의뢰로 지난달 29∼30일 전구 만 18세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한 국정수행 지지율 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8.9%가 그쳤다. 전주 대비 3.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부정평가는 68.5%로 전주보다 4.1%포인트 올랐다. 이 조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안심번호 무선 자동응답방식 100%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7.1%를 기록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의 한 3선 의원은 이번 학제개편안 발표와 관련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며 “결국 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어 “2030 부모들이나 예비 부모들의 경우 아이들의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20%대 지지율을 가진 대통령에게 좋을 게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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