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섰습니다."
절도 피해를 입은 시민이 경찰의 미온적 대처에 직접 잠복까지 해 범인을 붙잡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8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춘천시 일대를 돌며 이른바 차량털이를 하는 절도범을 붙잡아 경찰에 신고했다. 차량털이는 밤늦은 시각,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상가 인근에 차문이 열려있는 차량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절도범죄를 뜻한다.
온라인 기사 출고 이후 A씨는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기사를 게재해주길 부탁했다. A씨는 그러면서 "내 자신을 알리는 것 보다는 차량털이 범죄에 경각심을 주기위해 제보한 만큼 기사가 익명으로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A씨는 올해 6월8일, 춘천시 퇴계동 남춘천역 인근 상가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량 안에 있던 현금 50만원을 도둑맞았다. 그는 절도 피해 사실을 알고는 경찰에 곧바로 신고했다. 경찰 수사를 돕기 위해 절도범의 범행 당시 모습이 담긴 CCTV 영상도 직접 찾아 경찰에 제공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같은 달 22일, A씨가 절도 피해를 입은 장소 인근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왔다. 재차 경찰에 신고한 그는 "담당 사건이 많아 바쁘다는 춘천경찰서 소속 형사들의 말을 듣고 직접 범인을 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선 6월8일부터 6월22일까지의 피해지역 인근 상가(남춘천역 인근) CCTV를 확인해 범행 시각을 특정했다. A씨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절도범은 비가 오지 않는 날 그리고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남춘천역 인근 상가를 돌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절도범의 인상착의까지 확인한 A씨는 추가 피해자가 나온 6월22일, 재차 경찰에게 "비가 오지 않으면 거의 매일 상가 인근에 나타난다"며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순찰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순찰 강화 및 잠복근무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답변만 하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다음날인 23일 새벽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에 나선 A씨는 오전 2시48분쯤, 인근 상가 차량을 살피는 절도범을 발견했다. 자신이 그간 CCTV를 통해 살펴본 인상착의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절도범을 붙잡았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A씨는 "피해자가 더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범인이 도망가기 전 몸이 먼저 움직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 붙잡힌 절도범은 춘천시 지역 일대를 돌며 차량털이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해온 만큼 범인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CCTV를 보면 절도범은 거의 매일 인근 상가에 나타나 범행대상을 물색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인 검거가 늦어지면 주변 상인과 주민 등 피해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바쁜 경찰을 대신해 직접 나서게 됐다"며 "우리 동네 외에도 이런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차량털이 범죄에 모두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범인 검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춘천경찰서장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인근 상인 및 주민들은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하니 결국 일반 시민이 잠복까지 한 것 아니냐"며 경찰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했다. 남춘천역 인근 한 상인은 "신고할 때만 오고 이후에는 별 다른 조사도 하지 않으니, 일반 시민이 범인을 잡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강원 춘천경찰서 관계자는 "담당 형사는 ‘담당사건이 많아 바쁘다’라는 얘기를 한 사실이 없다"며 "A씨의 도움으로 범인을 검거한 것은 맞지만 담당 수사팀도 인근 블랙박스와 CCTV를 분석하는 등 범인검거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춘천경찰서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경찰은 사건 발생 접수 후 현장 주변 블랙박스 및 CCTV 등을 확보했다”며 “신고 당시 피해자 건물 주차장 CCTV를 확인하려 했지만 (피해자가)집에 사람이 없다고 해 (피해자로부터)추후 자료를 휴대폰으로 전송받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처음부터 직접 CCTV 자료를 전달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다.
또 “사건 담당 경찰과 지구대 경찰이 시민으로부터 순찰강화 및 잠복근무를 요구받은 사실이 없었다”며 “이를 위한 별도 행정절차를 밟아야 할 필요도 없는 만큼 관련 안내를 피해자에게 할 이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경찰은 신고 접수 이후 주변 탐문수사 및 방범용 CCTV 등을 확인하며 용의자 추적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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