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硏, 52개 지표분석 보고서
관악산 아래 신림 1∼2·4, 봉천 2
동작구 흑석·노량 1∼2 배수분구 등
집중호우 피해지 대표적 취약지 분류
주변보다 시세 저렴한 저지대 분포
반지하 많은 곳 1인 가구 몰려 살아
안전시스템 등 재해 상황에 더 취약
비 피해 중심 침수대책 시대 안 맞아
저층 밀집지 등 사회변화 적용 필요
당장 피해노출가구 안전대책도 시급
“단 10분 만에 천장까지 물이 차더라니까. 겨우 몸만 빠져나왔어.”
지난 18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주민센터 수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김부재(80)씨는 집중호우가 내린 열흘 전 악몽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는 “집이 저지대에 있지 않아 홍수는 안심하고 살았는데 밤에 누워 있다가 물소리에 화들짝 놀랐다”며 “1980년대부터 상도동에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재해에 김씨는 “살림이 다 젖었으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집에 한번 가봐야 하는데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고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동작구 반지하에서 수십년간 수해 걱정 없이 살았지만, 이 지역은 실제로 침수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일보가 서울시와 통계청 자료를 교차분석한 결과 서울 반지하 주택의 절반(53.8%)이 침수 위험 자치구에 있었다. 반지하 주택은 1인가구 밀집 지역에 많아 재해 대처에 더 취약한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게릴라성 폭우로 ‘재해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침수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반지하 주택의 특성에 따라 세밀한 재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관악·금천·마포 등 15개 자치구 침수위험 높아
29일 세계일보가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유역특성 기반의 서울시 침수위험성 분석’ 보고서의 침수위험 배수분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울 25개 자치구별 침수취약성을 분석한 결과 △관악 △광진 △금천 △마포 △동작 △성동 △강남 △서초 등 15개 자치구가 침수피해 위험이 높은 배수분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배수분구는 지형과 행정구역 등을 고려해 하수가 흐르는 지역을 구분한 것이다. 김씨의 집이 있는 상도동 역시 침수에 취약한 배수분구에 속했다. 김씨가 그동안 침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해당 배수분구는 평균 경사가 급하고 저지대 면적의 비율이 높아 홍수피해에 불리한 지형이었다. 그럼에도 이 일대에서는 한동안 홍수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반지하 주택 등에 차수막(물 차단막) 같은 대비책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집중호우에서 침수피해를 입은 관악, 동작, 서초 등 지역은 대부분 침수에 취약한 배수분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원은 서울시 163개 배수분구별 침수취약성을 분석했다. 지형뿐 아니라 하수관망 밀도, 빗물펌프장, 유수지 용량 등 52개 지표, 방재시설, 행정 등 대응능력을 종합 평가했다. 천재와 인재 가능성을 두루 본 것이다.
◆반지하 고지대 근처 저지대에 많아 침수에 불리
이 분석 자료를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의 반지하 주택 현황과 비교해보니 반지하 주택 절반(53.8%)이 침수위험 배수분구를 포함한 자치구 안에 있었다. 적지 않은 반지하 주택이 예상치 못한 침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2만113가구의 반지하가 있는 관악구에는 관악산 아래 위치한 신림 1~2·4, 봉천2 배수분구가 대표적인 침수취약지역으로 분류됐다. 지난 8일 집중호우에서 고지대에서 쏟아져내린 빗물로 반지하 주택의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반지하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반지하 주택은 1인가구가 밀집한 저층 주거지에 많은 특징이 있다. 관악구도 두 집 중 한 집(51.9%)이 1인가구다.
반지하가 서울에서 세 번째로 많은 광진구(1만4112가구) 역시 침수취약지역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중곡, 화양 배수분구는 침수취약지역으로 아차산, 용마산을 타고 내린 빗물로 평소 홍수피해가 잦은 곳이다. 이 지역 역시 주변보다 시세가 저렴해 1인가구가 많이 살았다.
이번 집중호우에서 반지하 주택 피해가 속출한 동작구도 흑석, 노량1~2 배수분구 등이 침수취약성이 높았다.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등 피해가 컸던 서초구 반포2 배수분구도 침수취약성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반지하 1인 가구 많지만 이사 잦아 관리 힘들어
반지하 주택이 1인가구 밀집 지역에 많아 재해 상황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지만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자치구마다 반지하 주택 등 침수취약구역 가구를 나눠 관리하지만, 1인가구의 이사가 잦고 가구주가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년 관리대상은 줄고 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2010년부터 분기별로 침수위험가구의 위험상황을 점검하고 재난교육을 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가구주가 번거로워하는 경우가 많아 당시보다 대상이 절반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침수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도 반지하 주택이 상당수 위치했다. 서울 전체 20만849개 반지하 가구 중 9만2721가구(46.2%)는 침수에 안전한 지형을 가진 자치구에 있었다. 관악·광진구를 제외하고 반지하 가구가 많은 자치구는 △중랑(7.0%) △강북(5.9%) △은평(5.7%) 순이었는데,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있거나 방재능력을 갖춰 침수위험이 적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게릴라성 폭우 대비 침수대응 역량 강화해야
연구원은 이 같은 유역 특성과 저층 주거지 밀집지역 등 사회적 특성을 기반으로 홍수 대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서울시가 그동안 과거 강우피해를 기반으로 침수발생 위험지구를 선정·관리했으나, 최근 기후변화로 어디서 국지성 호우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침수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0년에는 강서, 양천, 마포, 강남 일대 피해가 컸지만 2011년에는 관악, 서초, 도봉, 강북에 많은 비가 내렸다. 올해는 관악, 서초, 동작에 피해가 커 자치구별로 피해 규모가 천차만별이었다.
연구원 관계자는 “침수대책을 세울 때 피해 지역별로 위험성 평가를 하는데 5∼10년 단위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획돼 한계가 있었다”며 “불확실성이 큰 강우특성에 기반한 침수위험 관리보다 유역 내 침수발생 및 피해를 가중시키는 취약성을 중심으로 한 평가를 바탕으로 침수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서울시의 반지하 공공임대주택 이주대책에도 시급한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를 나누는 등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주현 건국대 명예교수(부동산학)는 “반지하 주택은 주차장 규정 등이 강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침수에 안전한 반지하 주택까지 강제로 폐지하는 것은 거주민을 고시원이나 쪽방으로 밀어내거나 임차료 상승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반지하 가구라도 우선순위를 정해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며 “당장 홍수피해에 노출된 반지하 가구는 차수막, 개폐식 창틀 등을 시급히 도입하는 등 안전을 보장하는 정책을 우선 논의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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