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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경제 활성화 vs 지자체 예산 부담… 지역화폐 존폐 기로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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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06 06:00:00 수정 : 2022-09-05 2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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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서며 예산 전액 삭감
지자체도 캐시백 할인율 잇단 축소
대전 1인 충전 한도 50만→30만원
부산·광주 등도 줄줄이 혜택 줄여

지역소상공인 “매출 기여했는데…”
온라인 쇼핑몰·기부서비스·배달 등
연계 플랫폼도 ‘연쇄 타격’ 불가피
매몰비 수십억… 혈세 낭비 지적도

경제 전문가 제언
지역 내 기관·민간 멤버십 추가
중소기업간 거래에 활용 제안도

정부가 내년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지역화폐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소상공인 보호, 지역경제 활성화 일환으로 적극 도입한 지역화폐는 덩치가 커지며 발행액은 급증했지만 정부 예산이 없어지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늘고 있다. 민선 8기 들어 대부분 정권이 교체된 지자체는 이미 올해 하반기부터 발행 규모와 캐시백(물건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에게 돈을 적립해 주는 제도) 할인율을 축소했다. 내년도 캐시백 예산도 올해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화폐의 가장 큰 이점이었던 캐시백 제공률이 줄면서 이용률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지역화폐 폐지 절차에 돌입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역화폐 충전 한도·캐시백 혜택 축소… 폐지 수순 밟나

 

5일 각 지역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는 올해 하반기부터 지역화폐의 충전 한도와 캐시백 혜택을 낮췄다. 예산 부족과 사용자 증가 등으로 예산 소진 시기가 빨라진 게 주된 이유다.

 

대전시는 최근 지역화폐인 ‘온통대전’ 1인당 충전 한도를 월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였다. 충전 시 할인율(캐시백)도 10%에서 5%로 낮추기로 했다. 올해 온통대전 발행 규모를 2조원으로 책정했지만 상반기에 이미 80% 이상을 발행해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전시는 내년도 캐시백 예산을 올해(1810억원)보다 대폭 삭감했다.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상황이다. 부산시도 지역화폐 ‘동백전’ 캐시백 혜택을 축소했다. 당초 월 결제액 기준으로 ‘50만원 한도 10%’였는데, ‘30만원 한도 5%’로 낮췄다. 부산시 역시 올해 동백전 발행 규모의 83%를 상반기에 발행하면서 하반기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인천시와 경남도 역시 지난 7월부터 지역화폐 캐시백 할인율을 기존 10%에서 5%로 조정했다. 강원도는 올해부터 ‘강원상품권’의 충전 한도를 30만원으로 줄이면서 캐시백을 5%로 줄였고, 춘천시는 ‘춘천사랑상품권’ 구매 한도를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축소했다.

일부 지자체는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광주광역시는 예산 문제로 지역화폐인 ‘광주상생카드’ 10% 캐시백 제공을 지난 6월부터 잠정 중단했다. 이는 국비 261억원을 포함한 예산 653억원이 바닥난 데에 따른 것이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 6월 충전 한도를 월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축소하고, 같은 달 말 10% 캐시백 혜택을 일시 중단했다.

 

캐시백 혜택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지자체도 지속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울산시는 월 구매 한도 20만원, 10% 할인을 지속 유지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올해 발행액은 9월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예산 확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발행 초창기였던 2018년까지만 해도 3714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3조2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고, 2020년엔 9조원, 지난해엔 22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연말 사용액까지 포함하는 올해 발행 규모는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전히 인기 있는 지역화폐

 

지자체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할인 혜택은 줄어들었지만 지역화폐 인기는 여전하다. 대전시의 온통대전 캐시백은 매월 소진 시까지 제공하는데, 5%로 줄었음에도 월 중순이면 캐시백 예산이 소진되고 있다.

 

서울시의 지역화폐인 ‘서울사랑상품권’(광역)은 서울 전역에서 쓸 수 있는 대신 할인 혜택이 자치구 전용의 10%보다 줄어든 7%였지만 판매 시작 1시간여 만에 모두 팔리는 진기록을 보였다. 서울시가 지난 7월에 발행한 250억원 규모의 1차상품권은 판매 시작 1시간여 만에 모두 팔렸고, 한도를 2배로 늘린 2차 판매 역시 1시간 만에 완판됐다. 서울사랑상품권은 1인당 월 4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다.

 

단순 결제 플랫폼에서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적 기능이 포함되면서 시민들의 호응도 높다.

 

부산시는 지역화폐인 동백전과 연계한 호출·배달·쇼핑몰 등의 공공 플랫폼을 잇달아 개발했다. 택시호출 서비스인 동백택시, 공공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인 동백통, 지역 온라인 쇼핑몰 동백몰, 기부서비스 동백드림 등이 그것이다. 동백택시는 기사와 승객에게 모두 호평받고 있다. 기사는 호출에 따른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승객은 택시비를 동백전으로 결제하면서 10%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동백통도 민간배달 앱과 달리 가맹점 가입비와 광고비,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온통대전 앱은 지역 소상공인의 상품을 살 수 있는 쇼핑몰인 온통대전몰, 배달 플랫폼 등과 함께 기부, 무료 세무 및 금융 상담 등을 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울산시의 울산페이는 배달 앱인 울산페달, 쇼핑몰 울산몰과 연계하고 있다.

 

인천시 인천e음의 대표적 부가서비스는 지역 기반의 소상공인 쇼핑 플랫폼인 ‘인천e음몰’이다. 2019년 2월 2000여개의 상품으로 시작해 현재는 7만여점에 달하고 있다. 누적 판매 금액도 올해 초 200억원을 돌파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지역화폐가 폐지되면 연계된 공공 플랫폼 접근성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e음 카드. 인천시 제공

◆소상공인 반발·폐지 시 매몰비용 고민

 

지역화폐는 지역 소상공인 보호 등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저소득층의 소비생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대전세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신용카드데이터 및 온통대전 발행통계를 활용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슈퍼마켓·지역서점 등 지역 소상공인에 쓰인 온통대전 결제율은 총 사용액 2조4215억원의 51.4%였다. 지역서점의 월평균 매출액은 2020년 269만원에서 올해 457만원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양준석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온통대전은 소상공인 매출 증대와 저소득층의 여유로운 소비생활 등의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역화폐 축소 등 방침에 지역 소상공인들은 우려를 표했다. 경북도 신도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모(30)씨는 “지역화폐가 도입되면서 고객층 유입이 확실히 늘었다”며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카드 수수료 부담도 줄어들어 음식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도움이 되는데 캐시백이 줄면서 손님도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 운영이 잠정 중단된 광주시 소상공인들은 울상이다.

 

이기성 광주중소상공인협회장은 “지역화폐 예산을 삭감하면서 소상공인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지난 6월 지역화폐 이용이 일시 중단된 이후 소상공인 매출의 30∼40%가 감소했다”고 하소연했다.

 

지역화폐 플랫폼 구축 및 유지·홍보비 등 폐지 시 발생하는 매몰비용은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시 ‘온통대전 플랫폼’ 운영 대행사 수수료는 2020년부터 올해 말까지 98억원이다. 홍보비로도 매년 5억원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지역화폐 폐지보다는 유지·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의 확장성은 크다”며 “처음엔 이용 촉진을 위해 할인 위주로 운영되다 플랫폼을 만들면서 배달 기능도 넣고, 지역 상품도 구입할 수 있는 등 기능이 많아져 없앤다면 매몰비용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전체 발행액을 줄이더라도 유지해 나가는 게 소상공인 보호나 지역 애착심 등 공동체 의식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 BNK부산은행 제공

◆“지역화폐, 지역경제 일등공신… 예산 적극 투입해야”

 

전문가들은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정책 기능 확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방분권 시대, 지방소멸 시대에 지역화폐의 기능은 단순히 소비 유도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지역화폐는 지방분권 시대 전국 각지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효과를 이끈 정책”이라며 “지방소멸 문제도 지역화폐를 활용해 충분히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의 이 같은 기능과 역할의 전제는 국가 예산이 반드시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부 지원이 필수로 있어야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하는 자구책도 효용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 유지를 위해 기업 간 결제수단으로 확장, 공동체 활성화 기능 제고 등을 제시했다.

 

양 교수는 “기존의 지역화폐 기능에 더해 지역 내 기관이나 민간의 멤버십 특화 기능을 추가·확대 제공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며 “학교 학생증이나 아파트 입주민 카드, 사원증, 자동기부 카드, 특정 공동체 회원증(멤버십 카드) 등에 기능을 추가해 특화된 멤버십 구조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간 거래에 지역화폐를 활용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의 일회성 소비가 아닌 지속적 순환 사용을 위한 채널 확보가 필요하다”며 “소비자와 기업 간 이뤄지는 결제 기능을 넘어 지역 내 중소상인과 중소기업들 간의 거래에 지역화폐로 대금 결제가 가능토록 해 지속적 순환 사용이 이뤄지면 유지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 확보 방안으로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일반 카드사의 포인트 지역화를 제언했다.

 

양 교수는 “지역에 있는 공기업 등이 ESG 경영을 강조하는데 지역 무료 봉사 등 부가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지역 발전을 공동 강구할 수 있는 방안은 지역화폐에 대한 캐시백을 투자하는 것”이라며 “ESG 경영 일환으로 기금을 기탁하면, 그 기금을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으로 활용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재투자조례를 통한 예산 확보 필요성도 역설했다. 지역 대형 영리은행, 지역 대기업 사업체, 지역 일반기업, 지역 시민 및 단체, 지자체, 대형 토목공사 수주기업 등이 지역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해 시스템 기본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지역재투자기금은 지자체와 시민사회 간 협치로 운영해 지역 영세 자영업자, 저신용등급 개인, 사회적경제 조직, 비정부기구(NGO) 등에 투자된다.

 

일반 신용카드 포인트의 지역화 필요성도 주장했다. 양 교수는 “카드 사용 시 적립되는 포인트를 지역화해서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으로 연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전국 지자체와 공조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대전·부산·울산·광주=강은선·오성택·이보람·한현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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