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母 살해 사건 등
영장 신청·청구 기각 안일한 판단
접근금지 조치 제때 안 이뤄져
신당역 사건서도 구속영장 기각
“잠정조치 4호 선제적 실시 필요”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대부분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가해자를 유치장에 수감하는 ‘잠정조치 4호’와 구속영장 신청을 하지 않거나,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반려하거나, 법원이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1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해 언론에 알려진 스토킹 살인 사건은 신당역 사건을 포함해 총 7건이다. 스토킹 범죄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사건, 성폭행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피해자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각 사건의 경과 조치를 살펴보면 경찰·검찰·법원의 안일한 판단과 미흡한 조치로 비극적 사건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찬 사건에선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법원에 신청하지 않았다. 2020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년 가까이 김병찬에게 스토킹을 당하던 피해자는 경찰 신고 후 지난해 11월7일 신변보호 대상자로 등록됐다. 김병찬이 2020년 12월 피해자로부터 주거침입 혐의로 신고당한 적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9일 김병찬에 대해 피해자에게 접근 및 연락을 금지하는 잠정조치 2·3호 결정을 내렸지만, 10일 뒤 피해자는 사망했다.
이석준 사건과 지난 6월 경기 안산에서 같은 건물에 사는 40대 피해자를 살해한 60대 남성의 사건에서도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석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감금돼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스토킹처벌법이 아닌 성폭력 및 감금으로 신고돼 스마트워치 지급과 주거지 순찰 조치만 이뤄졌다. 안산 사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건물 1층과 3층에 살아 접근금지 조치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이 접근금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50대 남성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검찰의 오판이 화를 키웠다. 지난 2월11일 피해자가 가해자를 폭행 및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했는데, 당일에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자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다음날 곧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영장을 반려했다. 이틀 후인 2월14일 피해자는 무참하게 희생됐다.
최근 발생한 신당역 사건의 경우 지난해 법원이 가해자 전모(31)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올해 초 피해자의 두 번째 고소에도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한국은 분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선, 잠정조치 4호의 경우 법원에서 기각률이 높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경찰청과 법무부로부터 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신청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신청된 잠정조치 4호 500건 중 승인된 건은 225건(45%)에 불과하다.
잠정조치는 긴급한 상황일 때 행하는 것인데, 빨리 승인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잠정조치 4호는 보통 경찰 신청 후 승인까지 2~3일가량이 소요된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스토킹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잠정조치 4호도 선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잠정조치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검사가 청구하고 판사가 인용하다 보면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며 “갑자기 강력범죄로 바뀌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경찰이 긴급하게 체포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넣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윤희근 경찰청장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과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검찰과 관련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이날 오전 이원석 검찰총장과 만난 뒤 “대검찰청은 경찰청, 지역단위의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며 “스토킹 신고부터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등 여러 단계마다 검경이 긴밀하게 논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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