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직무와 관련 때만 가능
소속기관은 몰라 징계처분 못 해
전주환은 적극 법해석 통해 알려
모든 범죄 알리는 공무원과 대조
1∼2년 전 발의 개정안 ‘지지부진’
음란물 유포 전력 땐 임용 막기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공기업·공공기관 직원이 성범죄로 수사를 받을 시 수사기관이 소속 기관에 이를 통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직무와 관련된 범죄 혐의가 아니면 수사기관이 소속 기관에 수사 개시 사실을 통보할 수 없다. 성범죄 등 중대한 비위행위를 저질러도 기관이 직위해제나 징계 등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주환(31)의 경우 경찰이 적극적 법 해석을 통해 서울교통공사에 수사 개시 사실을 통보했지만, 경찰이 원칙대로만 한다면 통보하지 않는 사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결국 근본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0월7일 전주환을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이튿날인 10월8일 서울교통공사에 수사 개시 사실 통보 공문을 송부했다. 공사는 닷새 뒤인 10월13일 전주환을 직위해제했다.
현행법은 공기업·공공기관 임직원의 경우 직무와 관련한 수사가 아니면 수사기관이 소속 기관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게 한다. 다만 당시 경찰은 전주환의 불법촬영 혐의가 직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해 공사에 이를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서울경찰청이 자체 판단을 해서 개시 통보를 한 것”이라고 했다.
공기업·공공기관 직원이 성범죄로 수사를 받더라도 소속 기관이 이 사실을 알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공공기관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인 만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돼서다.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은 어떤 범죄 혐의라도 수사가 개시되면 수사기관이 이를 통보하도록 돼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이에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수사기관이 공기업·공공기관 직원의 성범죄나 음주운전 수사 사실을 소속 기관에 통보해달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당시 권익위는 “공공기관 등은 통상 성범죄·음주운전에 대한 자체 징계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직원이 수사를 받더라도 그 사실을 몰라 징계처분을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권고 이유를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공기업·공공기관에 직원의 성범죄 수사사실을 통보하려면 공공기관운영법 등이 개정돼야 한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2020년 12월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제서야 소관위에서 심사 중이다.
당시 강 의원은 “공공기관 임직원은 공무원과 같이 업무수행에 있어 사익이 아닌 공익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고 민간 분야와 비교했을 때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지방공기업법 개정안도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 발의했다.
전주환처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죄 전력이 있어도 현행법상 공무원 임용에 문제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공무원법이 성폭력처벌법 위반 전력이 있는 자는 임용할 수 없게 규정하면서도 성범죄가 적용 가능한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결격사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탓이다. 이에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음란물 유포 범죄 이력을 포함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편 서울교통공사 김상범 사장은 전날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 마련된 피해자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 사장은 “일터에서 불의의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랜 기간 큰 고통 속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돼 통한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찾아내 고치고 조속히 대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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