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위로하고 도우며 화합과 회복 도모해야"
재난 피해자들은 재난을 당했다는 자체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여기에 재난 이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불편한 시선까지 받는다면 고통은 더 커진다. 재난을 당한 이후 이웃이나 정부와 갈등을 겪은 피해자들은 불안이나 우울 등 정신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피해자들의 정신질환 발병률은 자연재해보다 사회재난을 당했을 때, 재난으로 다쳤을 때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발생한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이러한 위험 요인에 많이 노출돼 있어 각별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 6일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재난피해자 정신질환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2차 스트레스 요인’ 연구에 따르면, 재난 자체로 인한 1차 스트레스뿐 아니라 재난 발생 후 간접적으로 겪는 2차 스트레스도 정신질환 발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부상자 등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심민영 센터장이 교신저자로 참여한 이 연구는 2012∼2017년 태풍·호우·지진·화재 등 재난 피해자 139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조사 대상자 중 11.2%는 재난 3개월 전에는 정신질환이 없었지만, 재난 후 정신질환이 발병했다. 피해자들이 진단받은 정신질환은 불안장애(46.7%), 우울장애(39.2%)가 다수를 차지한다.
재난 종류별로는 화재 등 사회재난 피해자의 정신질환 발병 우려가 지진·홍수 등 자연재해 피해자보다 6.25배 높았다. 1차 스트레스 요인 중에서는 재난으로 상해·질병 피해를 받은 경우 정신과적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2.58배 커졌다. 인구통계학적으로는 여성(2.27배), 고연령(1.28배), 낮은 수입(1.52배)일 때 정신질환 발병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스트레스 요인 중에서는 재난으로 이웃·지자체·정부와 갈등이 있으면 5.05배, 구호나 복구에 대한 신뢰성이 없는 정보를 받았을 때 3.32배, 국가의 보건의료서비스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 2.16배 정신질환 발병 위험이 커졌다. 즉 사회재난, 이웃·지자체·정부와 갈등 경험,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를 받은 경험, 재난으로 인한 신체 상해, 여성, 불충분한 보건·의료지원 순으로 정신질환 발병 예측력이 높았다. 주목할 점은 이웃·지자체·정부와 갈등 경험, 신뢰성이 없는 정보를 받은 경험 등 2차 스트레스 요인이 인구통계학적 요인이나 1차 스트레스 요인보다 더 큰 예측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연구 보고서는 “재난 후 심리적 개입을 할 때 2차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지 살피면 재난 경험자의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줄여줄 수 있다”며 “1차 스트레스 요인만큼 2차 스트레스에도 대응하는 중장기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웃·지자체·정부와 갈등 경험을 줄여 피해자의 심리 안정을 도우려면 신속하고 충분한 의료적 지원, 복구 자원 배분, 원인 규명, 보상 등 과정에서 갈등을 줄이는 제도와 절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센터장은 이태원 참사도 사회재난이고, 피해자들이 사회적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 결과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피해자들은 중상·경상 등으로 치료를 받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인터넷 공간에서는 축제를 즐기려던 사람들을 비난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심 센터장은 “비난이나 혐오는 피해 당사자들의 회복을 가로막는 2차 가해”라며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피해자를 위로하고 도우며 화합과 회복을 도모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심리 회복에 대해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1∼2년에 걸쳐 회복이 진행된다“며 “초기 1∼3개월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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