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가 나고서는 주말에도 손님이 몇 없을 정도로 상권이 죽었어요. 무리해서 식당을 열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손님들의 예약이 거짓말처럼 뚝 끊긴 건 정확히 그 일이 난 다음날부터였다고 했다. A씨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방촌에서 몇 달 전 식당을 개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모두 해제돼 이태원 일대가 막 살아나려는 참이었다.
이태원 참사가 난 10월29일 이후 사고가 난 이태원역과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대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까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특히 세련된 분위기의 음식점과 술집, 카페가 즐비해 주말마다 젊은이로 북적이던 해방촌과 경리단길이 유탄을 맞았다.
토요일이었던 12일 저녁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 한산했다.
용산구청 인근의 한 브런치 맛집은 평소 주말이면 대기 손님이 많게는 20팀 이상 있었지만, 이날은 손님이 앉은 테이블보다 빈 곳이 더 많았다. 이마저도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이 식당의 직원은 "참사가 난 이후부터 2주간 손님이 반의반 이상은 줄었다"고 말했다.
해방촌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평소 손님으로 가득하던 인기 카페는 직원들만 하릴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 사장 김모 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그나마 근처 주민들이 와주고 배달 앱(주문)이 있어서 낫지만, 오래가면 버틸 재간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태원동에 사는 직장인 정모(29) 씨는 "주말 밤에 집에 돌아올 때 보면 가게마다 사람이 들어차 있었는데 지금은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이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주말 해방촌의 유명 피자집에 갔더니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놀랐다"며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소문난 근처 고깃집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해방촌의 음식점 사장 B(60) 씨는 "사람들은 '이태원' 하면 이태원역과 해방촌, 경리단길까지 함께 묶어서 생각한다"며 "일종의 코스처럼 해방촌에서 술을 마시다 이태원역에 가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50대 C씨도 "주민들이야 사고가 난 동네와 이 동네가 거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놀러 오는 사람으로서는 다 같은 이태원"이라며 "최소한 연말까지는 근처 상권이 모두 죽어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근처에서 일어난 참사에 무거워진 이곳 상인들의 마음에 생계 걱정이 쌓이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상인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돌파구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B씨는 "코로나19 때는 방역을 하고 가림막 같은 걸 설치해 놓고 '안전하니 놀러 오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며 "손님들이 이곳으로 놀러 오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여기는 다른 동네니 오시라'고 어떻게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어떤 계기가 생겨 상권이 죽기 시작하면 손 쓸 틈 없이 무너지곤 한다"며 "참사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가라앉고 사람들이 이태원 전체가 안전하다고 인식해야만 인근 상권이 살아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이태원이 가진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대체할 만한 곳이 서울에 거의 없다"며 "시간이 꽤 걸리기는 하겠지만 가기 꺼려지는 마음만 극복된다면 다시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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