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목청
현대제철, 하루 8000t 물량 모두 못 보내
시멘트회사, 도로 막히자 철도·해상 출하
전국 재건축 공사 현장 등 ‘올스톱’ 우려
철도노조도 준법투쟁… 열차 운행 지연
물류대란 우려에 본격 대응 나서
고용부, 불법 운송거부 현장지도 나서
자가용 화물차 일시적 유상 운송 허가
정치권 “정치 파업… 엄정한 법 집행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부산항 등 전국 항만과 컨테이너 기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화물연대는 24일 0시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고, 물류 거점마다 운송 차질이 가시화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오전 10시 전국 16곳에서 출정식을 열고 파업 시작을 선언했다. 각 지역본부가 출정식을 개최한 장소에는 운송을 멈춘 화물차가 대열을 이룬 채 늘어섰고, 노조원들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의 구호를 외쳤다.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에 따라 기업체들은 제품 반입과 출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처럼 적정 수준의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는 제도다. 2020년 시멘트와 컨테이너 화물을 대상으로 일몰제로 도입됐고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화물연대는 물가와 유류비는 치솟았지만 운임은 10여년간 오히려 하락해 많은 화물기사가 생계를 위해 억지로 과속·과적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기사들이 과로에 내몰리며 도로 안전도 위협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6월 파업 당시 정부가 안전운임제 확대 논의를 약속했지만 이후 오히려 개악에 나섰다고 반발했다.
이날 수도권 최대 물류 거점인 경기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 도로에선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소속 화물기사 1100여명이 모여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는 ‘의왕ICD’ ‘평택항’ 등 소속 지회가 적힌 깃발이 늘어섰다.
출정식 주변 길가에 주차된 트레일러에는 ‘차고지 외 밤샘주차’를 알리는 딱지가 붙었다. 화물기사 김모(50)씨는 “오죽하면 길거리로 나왔겠느냐”며 “안전운임제가 없어지면 한 달 500만원 가까이 나가는 차량 할부금과 한 번에 50만원 이상 나가는 유류비를 낸 뒤 생활비 대기도 힘들어진다”고 하소연했다.
의왕 ICD 측은 당장 큰 운송 차질은 없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화물 운송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최대 수출입 항만인 부산항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6월 파업 때 적잖은 피해를 봤던 부산항은 운영 차질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화물을 싣고 오가는 컨테이너 차량으로 붐빌 북항 신선대 부두는 이날 한적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남 광양항터미널의 경우 입구가 트레일러 차량으로 가로막혀 화물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 평택·당진항의 컨테이너 부두 하역사와 육상운송 회사 대부분도 운영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하루 8000t 물량을 출하하는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이날 전혀 물량을 내보내지 못했다. 육로와 해상 출하량이 평균 2만7000t에 달하는 강원 삼척 삼표 시멘트는 파업으로 육로가 막히자 해상으로만 2만5000t을 출하했고, 동해 쌍용시멘트도 철로를 통해 4000t가량만 먼저 출하한 상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완성차를 지역별 출고센터로 탁송하는 ‘카캐리어’ 조합원들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현대차 직원들이 일부 투입돼 완성차를 이송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건설업계 건설자재 공급, 감귤 유통, 제주삼다수 수도권 운송 등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 주말부터는 전국의 레미콘 공장이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수도권 레미콘 운송 노조의 서울 사대문 내 운송 거부 사태에 이어 코레일의 오봉역 사고 여파로 수도권 주요 유통기지인 의왕 기지는 시멘트 출하가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치면서 내달 초 분양 예정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은 1∼2일 이내에 레미콘 타설을 멈춰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국철도노동조합도 이날 오전 9시부터 시간외·휴일근무 거부 등 준법투쟁에 들어가면서 무궁화호 등 일부 일반열차가 최장 1시간 40분가량 지연 운행됐다. 이들은 정부와 코레일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다음달 2일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韓총리 “경제에 충격 주는 행동 유감” 지자체선 비상수송대책 본격 가동
정부는 2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자 즉각 강경 대응 기조를 천명하고 나섰다. 광역·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 물류 수송 공백 최소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여권에서는 화물연대 총파업을 비롯한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의 ‘줄파업’을 겨냥한 날 선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출입기자단과 만나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질문에 “경제가 정말 어려운데 운송 거부라는, 어떻게 보면 경제에 가장 충격을 주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답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수도권 물류 거점인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연 현장 상황회의에서 ‘업무 개시 명령’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미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고도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도 종합상황 대책본부를 꾸리고, 전국 48개 지방 관서에 현장지도반을 구성했다. 고용부는 대책본부 중심으로 현장별 집단 운송 거부 관련 동향을 점검하고, 불법적인 운송 거부와 운송 방해 행위를 자제하도록 적극 지도할 계획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운송 거부를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며 “불법행위 발생 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각 광역·지자체도 속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 부산시는 이날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경남도 역시 파업이 끝날 때까지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가동하기로 했다. 경북 구미시는 이번 파업으로 구미산단 입주업체의 물류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강원도는 자가용 유상 운송 허가제를 실시, 8t 이상 일반용 화물차와 견인형 특수자동차도 물류 운송이 가능하도록 행정 조치할 방침이다. 전북도도 자가용 화물차 1300여대에 대해 일시적인 유상 운송을 허가하고 비상수송대책반을 가동했다.
정치권에선 맹폭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은 전국 항만과 산업시설의 마비를 초래할 것”이라며 “위기에 놓인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국민이 원하는 건 힘을 앞세운 횡포나 파업이 아니다”라며 “서로 머리 맞대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한다. 총파업을 즉시 접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 당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나락으로 끌고 가려 하는가”라며 “무엇보다 불법적 운송 거부나 운송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용 없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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