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구룡마을 대나무숲 국내 최대 군락지/한겨울에도 싱싱한 푸르름 가득/위풍당당 미륵산성 올라 가슴 활짝 열고 2023년 맞다
바람이 분다. 하늘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간 울창한 대나무숲으로. 사각사각.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적거리는 댓잎 서로 부대끼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오솔길 따라 어머니 품처럼 곱게 깔린 댓잎 밟고 걷는 소리. 그리고 초록색 댓잎과 눈부시게 투명한 파란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밝고 희망찬 새해 햇살까지. 두 팔 높이 치켜들어 크게 호흡하며 기지개 켜자 구룡마을 대나무숲의 싱싱한 푸르름이 가슴 가득 밀려들며 세포 하나하나를 싱그러운 녹색으로 채운다.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숲 거닐며 새해 시작해볼까
섭씨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이니 주말에도 좀처럼 집 밖을 나서기 쉽지 않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TV 리모컨을 돌리다 보니 갑자기 내 자신이 좀 한심해 보인다. 그래, 새해인데 새롭고 희망적인 뭔가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사진 한 장에 눈이 번쩍 뜨인다. 바로 여기다! 아직 털어내지 못한 지난해 묵은 찌꺼기 모두 비워내고 힘찬 새해를 맞으러 전북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구룡마을 대나무숲으로 달려간다.
익산 여행자들에게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워낙 유명한 탓이다. 더구나 대나무숲은 겨울에도 따뜻한 남도 지방에서나 볼 수 있으니 전북에 대나무숲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다. 실제 전남 담양군 소쇄원이나 부산 기장군의 아홉산숲 등 유명한 대나무숲은 대부분 남도에 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전국 최대 대나무 군락지로 전체 면적은 무려 5만㎡에 달한다.
좁은 대나무 터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왕대가 빽빽하다. 대나무 사이로는 작은 오솔길이 아기자기 이어진다. 마치 주인공들이 대나무숲을 날아다니는 유명한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실제 인기 드라마 ‘추노’가 이곳에서 촬영했다. 드라마도 반할 정도니 길을 걷다 멈춰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을 얻는다. 오솔길에는 매해 쌓이고 쌓인 갈색 댓잎이 융단처럼 깔려 발바닥으로 따뜻하고 푹신한 어머니 품 같은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자세히 보니 여러 수종이 섞여 있다. 왕대가 가장 많고 검은 대나무인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도 어우러진다. 덕분에 다양한 색이 층층이 어우러져 대나무숲을 더욱 예쁘게 만들었다. 이곳은 왕대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한때 익산의 중요한 소득 자원이라 ‘생금밭’으로 불렸고 죽제품은 우리나라 3대 오일장인 강경 오일장을 통해 충청도, 경기도까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요즘은 6∼8월에 반딧불을 만나러 숲으로 많은 이들이 몰린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밤이면 반딧불이 이리저리 춤을 추며 신비로운 생명력을 선사한다.
우물터에서 소통의 길과 명상의 길로 갈린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길은 헤어졌다 서로 만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명상의 길을 따라 걷는다. 찾는 이 거의 없어 혼자 숲을 독차지한 것 같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바람이 댓잎으로 연주하는 노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온몸이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의 생동감으로 충만해져 한 해를 살아갈 기운을 잔뜩 얻는다. 숲에는 2005년 큰 위기가 닥쳤다. 그해 겨울에 냉해를 당해 왕대가 거의 고사할 뻔했는데 마을 주민과 산 소유주, 익산시, 전북생명숲 등이 2006년부터 고사된 대나무를 제거하고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곳은 사유지라 죽순 채취는 절대 금지다.
◆백제 문화유산 그윽한 향기 따라가다
대나무숲에서 미륵산 둘레길 2코스가 시작되는데 완만한 길이라 걷기 좋으며 미륵사지를 지나 가양정류소까지 8㎞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익산은 검소하지만 화려했던 백제 문화유산의 향기가 남아 있는 고도(古都)로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미륵산성이 대표적이다. 금마면 신용리 미륵산성 가는 길 입구에도 울창한 대나무숲이 여행자를 반긴다. 미륵산 자락을 따라 산속으로 20여분 걸어 올라가면 한눈에 대단한 위용의 미륵산성이 펼쳐진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쌓아 올린 산성 길이는 무려 1822m에 달한다. 성벽에서 ‘ㄷ’자로 돌출된 치(雉) 10개와 동문지·남문지·옹성이 남아 있다. 왼쪽 성벽은 경사가 매우 가팔라 출입 금지다. 오른쪽 성벽은 안쪽에 계단이 놓여 있어 올라가 볼 수 있다. 5분여 걸어 성벽 위에 섰다. 능선을 따라 양쪽으로 펼쳐지는 위풍당당한 산성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準王)이 산성을 쌓아 ‘기준성’으로도 불린다. 미륵산 옛 이름을 따 ‘용화산성’이란 이름도 지녔다.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왕 견훤이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견훤이 총애하던 4남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장남 신검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에 견훤의 요청으로 왕건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신검의 군대를 공격했고 도망치던 신검을 쫓아 마성에서 항복을 받아냈다. 마성이 바로 미륵산성이다. 성문에는 방어에 유리하도록 작은 성을 따로 쌓았고 성 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익산토성과 도토성에서 출토된 형태와 동일한 ‘금마저성(金馬渚城)’과 ‘금마군범요점(金馬郡凡窯店)’이라고 적힌 기와가 출토돼 미륵산성의 축조 시기를 8세기 중·후반 경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다수의 삼국시대(백제) 유물이 확인되고 있어 이미 백제 때 축조됐을 가능성도 크다.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는 백제의 최대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이 창건했고 17세기경에 폐사됐다. 미륵사지로 들어서자 서탑(국보11호)의 웅장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석재 1627개를 짜 맞춘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이자 규모가 가장 큰 석탑으로 높이 14.5m, 폭은 12.5m에 달한다. 동탑은 1980년 발굴이 시작될 당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석재가 유출돼 새로 지은 탑이다. 서탑과 동탑 사이 중앙에는 서탑보다 몇 배 큰 규모의 나무탑이 미륵사의 중심을 잡고 높이 서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륵사지의 발굴은 15년 동안 진행됐고 유물 2만여점이 출토됐다.
인근 왕궁리 유적으로 들어서자 5층 석탑이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풍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에는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로 기록돼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된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실제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帝釋精舍)터와 그 안에 관궁사·대궁사 등의 절터, 대궁터가 남아 있다. 조사 결과 왕궁은 폭 3m, 동서 245m, 남북 490m의 장방형 담장으로 둘러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에는 왕이 정사나 의례를 행한 정전 등 백제 시대 건물지 14곳이 확인됐다.
◆겨울에도 따뜻하게 즐기는 쉼터, 왕궁 포레스트
왕궁면 호반로 왕궁 포레스트는 지난해 7월 문을 연 곳으로 추운 겨울에 여행하기 좋은 힐링 복합 문화 공간이다. 따뜻한 아열대 식물원으로 들어서자 미륵산성과 유적지를 돌아다니느라 얼었던 손과 발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빨간 동백꽃이 활짝 피어 벌써 봄이 온 듯 기분도 화사해진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상록활엽수, 야자나무 등 식물 100여종이 조화롭게 배치됐고 다양한 포토존에서 예쁜 사진도 건질 수 있다. 미니 폭포, 분수, 바람개비길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등받이가 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두 발을 쭉 뻗고 이국적인 야자수 너머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분수를 즐기다 보니 여행의 피로는 금세 사라진다. 식물원 바로 옆 50석 규모의 족욕 시설에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왕궁 저수지를 감상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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