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주고 안 받기' 원칙 세운 직장인도
최근 물가가 고공행진하며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세뱃돈 물가'마저 올라 고향 가기 두렵다는 하소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형제·조카가 많은 중장년층에서는 아예 고향가는 것을 포기하거나 시댁·친정 중 한 곳만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세뱃돈 물가'의 급격한 오름세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업체 네이트Q가 최근 성인 약 6천명에게 적정 세뱃돈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43%(2천650명)가 5만원이라고 답했다. 10만원을 꼽은 사람도 10%(610명)에 달했다.
조사 기관과 대상이 다르긴 하지만 2020년 비슷한 설문에서 성인 43%가 세뱃돈으로 1만원이 적당하다고 답한 것과 대조된다. 급등하는 물가에 발맞춰 세뱃돈 액수도 크게 오른 셈이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주부 김정희(55)씨는 "다른 물가가 올랐으니 세뱃돈도 그에 연동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처럼 느껴진다"며 "시댁과 친정 조카를 합해 15명인데 세뱃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체면이 좀 안 서더라도 세뱃돈을 3만원으로 통일하거나 시댁과 친정 중 한 곳만 방문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주부 오모(64)씨도 "요즘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도 5만원 이하로 부조금을 내는 사람이 드물듯이 세뱃돈 물가도 비슷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 부담스러워도 중학생 이상이면 그 정도 액수를 맞춰줘야 하지 않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뱃돈이 부담스러워 아예 친척을 만나지 않으려 한다는 이들도 있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모(33)씨는 연휴 첫날 고향인 경주에 가지만 온 가족이 모이는 큰아버지 집에는 가지 않을 작정이다.
대가족이라 조카는 물론 나이 어린 사촌이 많다는 그는 "가면 분명히 세배할 텐데 절만 받고 돈을 안 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오빠와 나는 집에 있고 부모님만 성묘할 때 잠시 다녀오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배성윤(48)씨는 지난 설부터 '안 주고 안 받기'를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배씨는 "언니·동생들과 서로 자식들한테 세뱃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돈 때문에 가족이 모이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게 너무 싫었다"고 설명했다.
어차피 같은 금액을 주고받을 텐데 차라리 그 돈으로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게 낫다는 게 배씨의 생각이다.
비혼 직장인 황모(40)씨는 "세뱃돈을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상황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꼭 돈을 주면서 새해 덕담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세뱃돈을 안 준 지 벌써 5년은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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