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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미래] 무덤 앞에 선 연공형 인사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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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17 00:08:05 수정 : 2023-02-17 0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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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보편적 산업인력 양산한 체계
고령화 등 이유 美·日선 운명 다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실현 관점서
관료제적 인사제 혁신은 불가피

고용관계는 정치적 관계이며 노동력의 배치와 일의 배분은 권력 현상이다. 베버는 이를 전문화된 직무체계 및 합리적 규칙에 의해 통제되는 관료제와 인격적 위계에 기초해 개인적 권위로 통제하는 가산적 지배로 구분한다. 연공형 인사관리는 가산적 지배와 관료적 통제의 결합이다. 우리 기업은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채 대주주(주인)의 사적 신념과 가치가 인사관리를 지배하며, 관리와 통제의 효율성을 위해 중간관리자(대리인)를 설정하고 이들을 관료적 행정체계에 배치함으로써 지휘와 명령의 위계를 구성했다. 인격적 공순(恭順)관계가 관료제 위에 얹혀 있는 유사근대적 구조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유권 기반 ‘가산관료제적’ 지배는 인수합병의 위협과 단기 이익 극대화의 압력으로부터 경영을 보호했고, 주주들의 목소리를 통제했으며, 시장의 해고 압력으로부터 고용을 보호할 수 있었다.

연공형 체계에서 구직자들은 학교 졸업과 동시에 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회사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고용 기회는 단 한 차례, 학교를 졸업할 때뿐이다. 입직할 수 있는 통로가 내부노동시장의 하단에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고졸자는 생산직으로, 대졸자는 사무직으로 지원하며 진입에 성공하면 사회적 신분으로서의 ‘사원’이 된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말단으로 진입한 사원에게 요구되는 지식은 창업자의 철학과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다. 수행해야 할 직무 관련 지식은 후순위이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동료 중 누가 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의 선호가 반영되긴 하나 누가 무슨 일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다. 업무의 배정은 임의적이며, 시작과 마감 또한 관리자에 의해 통제된다. 불규칙하며 예측이 불가능하고 자주적 통제가 제한된다. 퇴근 직전에 오더가 내려오는가 하면 퇴근 후의 업무 지시도 빈번하다. 연공에 따른 지배-종속이 신분 질서로 체계화되며 평가와 보상이 그 위에서 작동하므로 저항과 이탈이 어렵다.

연공형 인사관리를 체계화한 원조는 일본 기업이다. 전후 일본은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기업과 정부기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했다. 교육기관은 산업에 필요한 보편적 언어와 수리 능력, 조직이 요구하는 적절한 태도와 행동, 협업을 위한 사회적 인맥의 형성을 목표로 인재를 양성했다. 졸업과 동시에 이들은 기업에 들어가 가산공동체로서의 회사에서 헌신하며 승진했다. 미국에도 연공주의가 존재하며, 직무통제형 노조주의에 기반한 단체협약으로 규율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경영상 해고와 재고용은 연차에 의해 결정되며 최근 입사자부터 해고되고 재고용은 역순이다. 직무 사다리에서 상위 직무로의 승급은 조건이 같다면 높은 연차에 배정된다. 그 결과가 1970년대 미국의 내부노동시장이다.

이제 일본과 미국 기업에 과거와 같은 연공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은 고령화에 따른 비용을 조절하기 위해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했으며, 고학력 청년노동자는 연공제가 능력주의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임금과 승진 결정에 연공효과는 줄었고, 역량과 성과 등의 요소가 포함됐다. 미국의 경우 직무 통제에 기반한 연공지배는 생산직 직무가 통합되면서 필요가 소멸했다.

채용, 평가, 승진의 공정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등 관점에서 연공형 인사제도의 혁신은 불가피하다. 일의 경계와 내용이 불확실한 체계에서 업무 예측은 불가능하며 전문성에 기반한 경력 형성 또한 어렵다. 관리자의 임의적 역할 통제와 업무 배분은 불확실성을 확대하며 장시간 노동을 유인한다. 직무든 역할이든 비인격적 기준에 따른 제도로의 재구성과 고용관계 재편은 역량 있는 청년노동력의 선발과 유지, 고령근로자의 고용 안정, 여성노동자의 고용 확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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