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한 몸처럼 따라줘야 일 가능
尹心에 맞는 김기현이가 돼야 합니다”
“안철수, 뿌리는 약하지만 공천 잘할 것”
安 ‘깨끗한 이미지’ 호응… 정통성은 약점
金·安 저울질에 무게추는 金으로 쏠려
계파 갈등 염증에 천하람 지지도 늘어
“당대표요? 대통령을 위해서는 김기현이를 뽑아야 하고, 다음 총선을 위해서는 안철수를 뽑아야지. 그런데 김기현 쪽으로 안 기울겠어요?”
대구 서문시장에서 41년째 내의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 이모(65)씨는 28일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는 누가 돼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곁을 지나던 중장년층 남성 행인은 질문을 엿듣곤 “김기현이!”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세계일보는 이날 보수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 장소인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에 응한 10명의 시민 답변을 종합하면, 대구 민심은 차기 당대표로 김기현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저울질하는 분위기였다. 전당대회가 각종 의혹과 공세가 난무하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는 데 대한 실망감도 느껴졌다.
◆김기현, ‘윤심’이라 지지… 호감은 그닥
“김기현이나 안철수 둘 중 하나가 돼서 대통령과 혼연일체로 일해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야지.” 서문시장에서 40년째 한복지를 장사하는 한교정(79)씨는 답변을 준비하기라도 한 듯 막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두 사람 다 양날의 칼 같아요. 안철수는 뿌리가 약한데 공천을 잘할 것 같고, 대통령한테 힘을 실어줄라카믄 김기현이가 나은 것 같고.”
한씨는 이번 전당대회에 투표권을 갖는 국민의힘 책임당원이다. 한동안 김 후보와 안 후보의 장단점을 설명하던 그는 ‘굳이 고르자면 누구를 뽑겠느냐’는 질문엔 명쾌하게 김 후보의 이름을 불렀다. “김기현이가 돼야 안 켔어요. 대통령의 시선도 그짝으로 가 있는 것 같고. 대구 사람들의 모든 시점은 대통령에게 맞춰져 있어요.”
신문 정치면을 읽던 포장자재 상인 김명섭(69)씨도 김 후보 지지 이유로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들었다. “당정이 한 몸처럼 따라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아입니까. 당에 윤심이 작용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김기현이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김 후보 지지자들은 ‘윤심 외에 지지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김 후보의 당선을 점친 이모씨는 “개인적으로는 김 후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카리스마도 없고 인지도도 없지 않나”라고 평했다.
◆안철수 ‘도덕성’ 호응… 정통성 문제 걸림돌
안 후보는 ‘깨끗한 이미지’가 호응을 받는 분위기였다. 35년째 의류 장사를 하는 김모(58)씨는 “안 후보는 와이프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도덕성이 있어서 비리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심’이 아니지 않냐는 지적에도 적극 두둔했다.
“아부하는 사람만 있으면 연산군밖에 더 되겠어요? 그렇다고 안철수가 대통령에게 무조건 반대도 안 할 텐데, 타협하고 조율하면서 살아야지.”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밝힌 남편 강모(69)씨도 자재를 들고 매장을 바쁘게 드나들면서 맞장구를 쳤다. 김 후보 지지자인 목기 용품 상인 정모(61)씨도 “깨끗하긴 안 후보가 깨끗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족한 보수 정통성’이 안 후보의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김명섭씨는 “안 후보는 기회주의자처럼 여론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류 상인 박모(66)씨도 “지난 대선 토론 때도 지켜봤는데 안 후보는 믿음이 안 간다”고 했다.
◆천하람·황교안에도 일부 눈길
당내 친윤계에 염증을 느끼며 ‘개혁 보수’를 표방하는 천하람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도 있었다. 30년째 양말을 팔고 있는 김모(56)씨는 “대통령실이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나. 자신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다”라며 “젊은 피가 수혈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을 겨냥해선 “그 사람들이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서 경상도 사람들도 아주 싫어한다. 상왕 정치도 아니고 말이지”라고 했다. 그는 한 달 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고 밝혔다.
황교안 후보에 대해선 “이미지는 좋은데 지난 총선에서 실패한 장수다”(한교정씨) “대통령의 힘을 못 받고 있지 않나”(박모씨) 등의 의견이 나왔다.
◆후보 간 비방전에 싸늘한 민심
전통적으로 정치 고관심층들이 많은 곳이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는 눈길을 안 주는 시민이 적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를 시도한 26명의 시민 중 상당수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관심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구 토박이인 택시기사 정모(73)씨는 “아이고, 정치 일 묻지 마세요. 머리 다 빠져요”라며 “엉망이다, 엉망. 물가까지 폭등하는데”라고 말했다. 한 건어물 상인은 “금마들 싸우는 거 관심 없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정모씨는 “당대표 후보들이 비전은 내세우지 않고 서로 헐뜯는 경선을 하니 보기가 좀 민망스럽다”라며 “가화만사성이라고 당내에 분란이 생기면 일이 잘 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TK 연설회에 당원 운집… 주자들, 당심 호소
이날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당권 주자들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는 인파가 몰렸다. 3000석 규모의 행사장은 지지자들로 빈틈없이 메워졌고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약 2000명의 지지자들은 행사장 밖에서 응원전을 벌였다.
각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자들은 연설회가 시작되기 수 시간 전부터 행사장 앞에 모여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고 꽹과리와 북을 치며 잔치 분위기를 자아냈다. 각 후보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깃발과 플래카드도 곳곳에 내걸렸다. 행사장 안팎에서는 서로 다른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자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후보들은 보수 텃밭인 TK(대구·경북)지역을 바로 세우겠다며 앞다퉈 당심에 호소했다. 당대표 후보들은 네거티브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전까지의 연설회와 달리 이날은 정견발표에서 김 후보의 ‘울산 KTX 역세권 부동산 의혹’을 달리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후보는 이날도 “전당대회는 당원 모두가 하나 되는 잔치지 집안싸움·내부 총질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자신에 관한 의혹 제기를 비판했다.
장내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일부 당원들은 후보가 발언하는 동안 야유하거나 비속어를 내뱉기도 했다. 특히 공천권 개혁이나 이준석 전 대표 비호 내용 등이 담긴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후보)’ 4인방의 연설 때 “치아라(그만해라)”, “내려와”, “배신자 이핵관(이준석 핵심관계자)” 등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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