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도깨비 ‘문’ 인상적… 영화적 힌트 얻었다
매일 문 열고 나갔다 돌아와… 재해는 그 일상의 멈춤
전작 히트 후 책임 커져…아픈 기억 영화로 물려주려 해
도시·풍경은 사람 마음 반영… 한·일 마음 닮은 것 같아
일 애니·한국 드라마 그래서 인기…문화 교류 지속되길
“한국 드라마인 ‘도깨비’에서 문을 사용하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문을 (영화의 모티브로) 설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은 일상의 심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가고, ‘왔습니다’하고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재해라는 것은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이죠.”
‘스즈메의 문단속’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문’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스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포함, 그가 만든 세 개의 재난 소재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연속으로 모두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했다. 한국에서도 그가 연출한 ‘너의 이름은.’이 2017년 개봉해 38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중 국내 흥행 순위 1위의 영화다.
영화가 개봉한 8일 그는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스크린 너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규슈의 한적한 마을 소녀 스즈메가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기 위해 여행하는 소타를 만나고, 우연히 폐허가 된 거리의 문을 열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린다.
재앙을 막는 돌에서 살아 있는 고양이로 변신한 ‘다이진’과 인간 소타의 영혼이 깃든 세발만 있는 아이용 ‘의자’는 영화의 전개에 있어 스즈메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변덕스러운 자연을 상징하는 걸 생각하다가 고양이로 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인간을 덮쳐오기도 합니다. 쓰나미 같은 것이 그렇죠.
소타를 의자로 설정한 것은 영화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현실에 있었던 큰 비극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인데요. 스즈메의 이야기만 그리면 너무 무겁고 괴로울 거라 생각했죠. 스즈메와 함께 다니는 의자는 그 장소에 있기만 해도 맘을 누그러뜨리고 굉장히 귀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의자 다리가 세 개인 건 코믹한 느낌이 영화의 온도를 올려주는 동시에 엄마를 잃은 스즈메의 상실감에 대한 메타포이며, 그럼에도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쓰나미와 지진 재해를 다룬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무겁다. 상업적으로는 마이너스 요소다.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를 하고 (영화를 만드는) 책임을 더 져야 한다는 기분을 갖게 됐어요. 영화가 히트하고 나면 그다음 작품을 봐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힘이기도 하면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전 작품이 히트하면 (다음 작품도) 사람들이 히트한 감독작품인데 가서 보자고 생각을 하니까, 단순히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일본 전체의 트라우마인 재해를 애니로 그려내면, 잊고 있고 잘 모르는 분들에게 기억을 전달할 수 있겠다, 젊은 분들에게 기억 남겨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너의 이름은으로 받게 된 책임을 하나 완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영화에는 80년대의 일본 내 히트곡들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영화와 현실이 실제로 이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설정이다. 많은 거리 역시 일본의 실제 공간을 그려 넣었다.
시간과 공간의 초월, 달리는 소년·소녀, 재해 등 그의 히트한 그의 영화 3편은 닮았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갇힌 건 아닐까.
“같은 감독이니까 확실히 공통점은 있죠. 세 작품이 재해를 다뤘으니까 앞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볼까 생각합니다. 아직 백지상태인데 이번에 한국에 와 있는 동안 힌트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차기작은 한국이 무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극장가는 일본 애니 열풍이 불고 있다. 9일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봉일인 8일 14만3000여명이 관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위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4위는 지난 2일 개봉한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로 모두 일본 애니다. 3위는 한국 영화인 대외비가 차지했다.
신카이 감독은 이런 일본 애니의 한국 흥행에 대해 “한국 관객분들에게 오히려 제가 왜 이렇게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지 여쭙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일본과 한국 어떤 문화적인 것이나 풍경이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에 올 때 가끔 거리를 보면 그립다는 느낌도 들고 이런 부분은 도쿄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거리가 닮았고, 풍경·도시의 모습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형태도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분들은 일본 애니를 많이 봐 주시고, 일본 분들은 한국의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치적 상황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고 파도같이 반복되지만, 문화에 있어서는 강하게 연결돼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재해와 단절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은 지진은 없다고 하더라도 재해는 여기저기서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전쟁도 있고, 사고도 있고, 그런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갑작스럽게 단절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일상이 단절되었을 때 사람을 어떻게 그것을 회복하고 다시 살아가게 되는가를 테마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분들도 이것은 우리들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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