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바짝 말라 물길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28년 동안 헬기 조종간을 잡은 경북119특수대응단 119항공대 제해용(54) 기장. 크고 작은 산불 현장에서 맹활약한 그조차 요즘처럼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긴 처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툭하면 산불이 나 출동을 해야 하는 데다 가뭄에 저수지 담수량이 크게 줄어 헬기 물주머니에 퍼담을 용수 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에 놓여 근심이 크다고 했다. 제 기장은 “이맘때 평소보다 담수량이 줄긴 하지만 올해처럼 가뭄이 심하지는 않았다”며 “물이 메말라 여기가 저수지인지 논밭인지 헷갈리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제 기장에 따르면 문제는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그는 “농업용수 공급으로 일년 중 4~5월에 저수지 물이 가장 줄어든다”면서 “이때 대형산불이 나면 헬기가 한꺼번에 저수지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급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서 만난 이모(72)씨는 바짝 마른 논을 바라보며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농사 걱정에 가슴이 누렇게 타들어 간다”던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풍양면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이튿날 꺼졌지만, 12시간여 만에 불씨가 되살아났다. 문제는 산불을 끄기 위해 마을 인근 저수지 물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 저수지는 이씨가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는 곳이었다. 이씨는 “가뭄으로 가뜩이나 농업용수가 부족한 데 이번 산불로 농사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상황은 다른 마을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마을 인근 소류지는 이맘때 2m 정도 물이 차지만, 지금은 수위가 성인 무릎 정도에 불과해 바닥이 비칠 정도로 담수량이 크게 줄었다. 실제로 소류지 가장자리의 흙은 조금만 만져도 부스러질 정도로 바짝 말라 있었다. 그는 “가뭄이 계속되면 다음달 모내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면서 “올해 농사는 시작부터 고비를 만난 것 같다”며 푸념했다.
경북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불 재난은 더 잦아지고, 더 커져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겨울 가뭄에 바싹 말라 있던 숲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지는 패턴이 반복하고 있다.
14일 도에 따르면 산불이 급증한 핵심적인 이유는 겨울 가뭄이 꼽힌다. 경북권의 최근 1년간 강수량은 893.7㎜다. 평년의 77.1%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5월까지는 강수량이 대체로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돼 남부 일부 지역의 가뭄은 4월 이후까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낙동강 경북권역인 안동·임하·영천댐 등 3개 댐은 가뭄 ‘주의’ 단계가 내려진 상태다.
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논·밭두렁 태우기와 담뱃불 등 부주의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작은 주의만 기울이면 산불을 예방할 수 있다. 도는 더 이상의 산불을 막고자 강도 높은 시책을 도입했다. 산림 인접 지역의 불법소각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본청 5급 사무관 230여명을 지역 책임관으로 지정하고 산불 기동단속반을 운영하고 있다.
행정명령을 위반하면 산림보호법과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최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산불을 내면 최고 1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처벌을 받는다. 도는 행정명령이 발령된 후 8~9일 이틀 동안 11건을 적발해 264만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도 관계자는 “작은 산불이 주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적 재난으로 확대할 수 있어 주민은 산불 예방에 적극 동참하기를 바란다”면서 “산불 원인자는 무관용을 원칙으로 엄중 처벌하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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