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간염, 단순 독성 물질로 발병 않고 대사물질 반응 과정에서 생성”
“면역억제제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독성 간염 치료에 적잖은 도움”
약물이나 한약, 건강기능식품을 무분별하게 복용했을 때 발생 할 수 있는 독성 간염(약인성 간 손상)의 발병 기전을 국내 연구진이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약물 섭취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성 간염 환자의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양현·배시현 교수,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 연구팀은 간 기능이 저하된 환자로부터 얻은 간 조직을 분석해 독성 간염이 단순 독성 물질로 인해 발병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독성 간염은 간이 섭취한 약물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발생해 간 수치가 급격이 상승하거나 간 기능에 손상이 나타난다. 급성 간염과 마찬가지로 식욕부진, 오심과 구토, 피로감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 관절 통증, 피부 발진 등이 관찰된다. 병이 진행되는 경우 복수, 간성뇌증으로 이어진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독성 간염의 실제 유병률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없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매년 인구 10만 명당 12명의 환자가 독성 간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연구팀은 2017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약물 복용에 따른 간 수치 상승이나 간 기능 저하를 이유로 조직 검사를 받은 53명의 환자로부터 얻은 간 조직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독성 간염은 독성 물질 또는 그 대사 물질에 대해 ‘CD8 양성 T세포’와 ‘단핵 식세포’ 등 특정한 면역세포들이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자들의 간에는 정상인의 간과 달리 이 세포의 침입이 명확히 관찰됐고, 침윤 정도가 간 손상 정도와 관련이 있었다.
CD8 양성 T세포는 ‘세포독성 T세포’로도 불리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단핵 식세포는 대식세포로 분화하기 전단계의 세포로, 분화되면 우리 몸에 침입한 외부 병원체 및 독성 물질을 제거하거나 포식작용을 통해 T세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세포의 계통 및 분화・성숙・활성화 단계 등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최신 유세포 분석 기법을 이용해 활성화 단계에 있는 CD8 양성 T세포와 단핵 식세포들이 간 손상의 정도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두 세포에서 분비되는 작은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의 양 또한 손상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연구팀은 새롭게 밝혀낸 독성 간염의 면역기전을 바탕으로 면역억제제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가 독성 간염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치료 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총 53명의 연구 대상 환자 중에 50명(94.3%)이 독성 간염 완치까지 추적 관찰됐는데, 전체 환자 중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환자는 37명(69.8%)이었다. 이들은 7~107일까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고, 투여 중단 후 재발은 없었다. 환자들의 스테로이드 투여 기간은 중앙값(데이터를 작은 값부터 순서대로 나열할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값)을 기준으로 30일이었다.
양 교수는 “약물 섭취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성 간염 환자의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면서 “이번 연구는 발병 기전을 파악해 특별한 치료법이 없던 독성 간염에서 스테로이드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정확한 기전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독성 간염 분야에서 면역학적 기전을 밝혀낸 것은 환자 치료는 물론 독성 간염 환자의 유병률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배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독성 간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상황”이라면서 “향후 독성 간염 환자의 치료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면역학 분야 국제학술지 '면역학의 개척자(Frontiers in Immunology)'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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