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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자녀 살해, 살인 미수…‘코인 열풍’의 그림자, 강력 범죄가 되어 사회로 돌아오다

, 이슈팀

입력 : 2023-04-03 13:17:22 수정 : 2023-04-03 13: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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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살인 사건에 전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근처에 차가 지나다니는 등 인적이 드물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대범한 범죄여서다.

 

‘납치·살인 3인조’ 범행 동기는 가상화폐였다. 피의자 3명 중 1명은 경찰에 “피해자 소유 가상화폐를 빼앗을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가족은 가상화폐 관련 회사를 차리는 등 관련 사업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범행을 총괄한 법률사무소 직원 이모(35)씨의 경우 피해자 권유로 코인에 투자했다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성을 납치 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긴급 체포된 가운데, 지난 3월 31일 유기한 시신이 발견된 대전 대덕구 대청호 인근에서 경찰 수사관들이 짐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비트코인 급상승 이후 한국을 휩쓴 ‘코인 열풍’의 그림자가 강력 범죄가 되어 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빚을 내 ‘올인’한 무분별한 투자, 순진한 투자자를 속이는 꾼 등이 모이면서 코인 투자판은 한번 발을 들이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욕망의 구렁텅이로 변했다. 이 같은 코인투자 실패는 때로는 지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의 범행동기가 됐고, 때로는 자녀 살해 이유가 됐다. 판결문 열람 등을 통해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빚어낸 한국 사회 민낯을 들여다본다.

 

◆투자 실패로 진 빚…비관하다 자녀 살해

 

지난해 1월27일, 초등학생 딸의 아버지였던 A씨는 법정에 섰다. 자신의 살인 혐의 재판 1심 선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A씨는 2009년 결혼해 딸을 출산한 뒤 2012년 아내와 이혼했다. 이후 딸을 혼자 양육해오던 중 2021년 4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A씨는 손실을 봤고, 2억원가량의 채무를 떠안게 됐다. A씨는 이때부터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

 

2021년 10월4일, A씨는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본인이 죽으면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딸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2021년 10월5일 자고 있는 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코인 투자 실패가 부른 비극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재판부는 “A씨는 딸에게 평소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을 사준 다음 자신은 술을 많이 마셔 취한 상태로 갑자기 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며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 사망하게 됐는데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심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망 당시 딸은 11살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인 투자 실패로 타박을 받자 자신의 여동생을 살해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평소 조현병을 앓고 있던 B씨는 가족들 몰래 부모 재산으로 주식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6억원가량의 손실을 봤다. B씨의 여동생은 이로 인해 B씨를 타박했고, B씨는 여동생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2021년 7월3일, B씨는 여동생을 죽이기로 마음 먹고 방으로 들어가 넘어뜨린 뒤 블루투스 스피커로 50회 이상 머리를 가격했다. 피해자가 강하게 반항하고 비명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나오면서 살인은 미수에 그쳤다.

 

재판부는 “B씨가 자신의 잘못으로 부모 재산을 탕진해 다른 가족에게 재산관리권을 넘겼음에도 피해자와 자신의 누나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앙심을 품었던 것도 범행 결심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조현병을 겪으며 피해자가 부모님을 칼로 협박하고 있다는 망상을 믿고 있었던 점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인 협박해 성착취…징역 7년

 

코인 투자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른 이도 있다. C씨는 비트코인 등에 투자를 하다 3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 나체 사진을 찍어 올려 팔아 대출금을 변제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C씨는 지난해 1월 초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집으로 부른 뒤, 흉기로 피해자를 위협했다. C씨는 “소리 지르지 마라. 어차피 옆집에 아무도 없다. 이러면 위협할 수밖에 없다. 옷을 벗고 사진을 찍어라”며 피해자를 협박해 나체 사진을 찍었다.

 

재판부는 C씨가 빚을 갚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코인 투자 실패가 끔찍한 성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갓 성인이 된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C씨의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자가 C씨의 엄벌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 형은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도 유지돼 그대로 확정됐다.

 

코인 투자 실패가 선박 방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뱃일을 하던 D씨는 비트코인 투자 실패로 1200만원의 채무가 생겼다. 이미 2900만원의 빚이 있던 그는 2021년 8월 29t짜리 배에 올랐다. 선수금 2000만원을 받은 터였다. D씨는 원래 기관장으로 뱃일을 했는데 당시엔 일반 선원 직급인 갑판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지인들로부터 “왜 이번엔 일반 선원으로 배에 탔느냐”는 말을 듣고 격분했고, 범행을 결심했다. 배에 불을 질러 배가 조선소에 수리하러 들어가면 자신은 다른 배에 기관장으로 탑승한 뒤 그때 받는 선수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생각이었다.

 

D씨는 2021년 10월 전남 목포 동명항에 정박해있던 배에 타 불을 질렀고, 자신이 선원으로 있던 배에 3억5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여씨는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이 역시 그대로 확정됐다.

서울 강남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 황모(왼쪽부터), 이모, 연모 씨가 각각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귀가하던 40대 중반 여성 A씨를 차량으로 납치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납치·살인 3인조’ 영장심사…“죄송하다”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납치·살인 3인조’는 법정에 들어서기 전 “죄송하다”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들은 수서경찰서 유치장을 나서면서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 ‘금품을 노렸는데 왜 살해했느냐’ 등의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지만, 서울중앙지법 앞에선 주류회사 직원인 황모(36)씨가 짧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스크와 모자, 모자가 달린 티셔츠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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