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던 2016년 6월, 기자는 1학기 종강 후 고향에 내려갔다. 그해 8월 교환학생을 가기로 돼 있던 터라 용돈벌이라도 할까 싶어 고향 읍내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집 근처에 있는 여러 편의점에 연락했고,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간 날 ‘사장님’은 “페이를 최저임금에 맞춰서 줄 수는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당시 최저임금은 6030원. 그런데 사장은 5000원을 제시했다. “다른 곳을 가도 여긴 다 똑같다”는 말과 함께였다. 기자가 지원한 근무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였다. 야간 근무에 최저시급도 못 받는 5000원이라니.
그래도 그땐 “최저임금을 주고 나면 우리가 남는 게 없고, 촌은 다 그렇다”는 편의점주 말이 그저 맞는 줄 알았다. 그렇게 2개월 반가량 밤새워 일했고, 매달 통장에 입금된 돈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돈 셈에 어두웠던 시절이었지만 월급을 받는 날이면 ‘최저임금이 더 높아지면 그만큼은 못해도 이보단 더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2016년 603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올해 9620원까지 올랐다. 내년 최저임금은 어떨까. 1만원을 넘을까.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1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파행했다.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에서 ‘물가 폭등 못 살겠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투쟁 구호를 외쳤고, 이를 공익위원 9명이 문제삼으면서다.
이날 파행은 내년 최저임금 산정 과정도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1만2000원을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동결을 원해 그 격차가 크다.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해질지, 또 그간 도입 요구가 꾸준히 있었던 업종별 구분(차등)도 도입될지 관심이 쏠린다.
◆“1만2000원” VS “동결”
고용노동부 소속 기관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차 전원회의를 열고자 했으나 파행했다. 박준식 위원장(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을 포함한 공익위원 9명이 끝내 불출석했는데, 이들은 근로자 위원이 아닌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는 상황을 문제삼았다. 박 위원장은 사무국 직원을 통해 노동계 인사들의 퇴장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끝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근로자 위원들은 오후 3시 55분쯤 회의 무산을 선언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앞서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최저임금위에 심의를 요청했다. 최저임금위는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해 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시해야 한다. 이날 회의는 차기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무산됐지만, 조만간 다시 일정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 논의 사항 중 가장 큰 관심사는 내년 최저임금이 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넘을지 여부다.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은 △2019년 8350원 △2020년 8590원 △2021년 8720원 △지난해 9160원 △올해 9620원이다. 전년 대비 인상률은 각각 10.9%, 2.87%, 1.5%, 5.05%, 5%였다. 만약 올해 인상률이 3.95% 이상이면 1만원을 넘는다.
협상에 임하면서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1만2000원을 제시했다. 올해보다 약 25% 인상된 수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지난 4일 이 수치를 제시했는데, 통상 6월쯤 요구안을 발표한 것보다 2개월 빨랐다. 노동계는 고물가 상황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계는 아직 요구안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동결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계 한 축인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미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한 상태다. 연합회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 영업이익이 43.1% 감소했고 대출 잔액은 1000조원을 넘었다”며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했다.
위원회는 사용자 위원 9명과 공익위원 9명, 근로자 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노사정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노동계와 경영계는 관행적으로 처음에 다소 무리한 수치를 제시해왔다. 이를 고려해보면, 내년 최저임금도 동결과 25% 인상 사이의 수치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에 가까운 수치가 도출될지가 핵심인 셈이다.
◆업종별 차등적용 이뤄질까
위원회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받아들일지도 관심사다. 그간 경영계는 최저임금에 차등 적용을 도입해 숙박업과 같이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2021년 8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지역별,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이제 시작이 돼야할 것 같다”며 업종별 차등적용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심의 당시 업종별 차등적용이 쟁점이 돼 표결까지 이뤄졌으나 표결에서 부결된 만큼 올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의 근거는 최저임금법에 있다. 최저임금법 제4조1항은 ‘최저임금은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사 합의만 있으면 차등적용이 가능한 셈이다. 다만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대해서 1988년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한 첫해만 적용하고 이후 한 번도 실시된 적 없다.
올해는 공익위원 요구로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업종별 차등적용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도 위원회에 보고됐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아직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해당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노동부는 시민사회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고서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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