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시장에 불리한 걸 빼고 나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런 식의 다큐는 다 실패한다고 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일대기도, (한 사람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촬영한 다큐도 아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첫 변론’ 연출을 맡은 김대현 감독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첫 변론’ 제작발표회에서 다큐에 관해 “사건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갖고서, 사건에 대해 다시 살펴보는 취지”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감독은 “‘박원순 다큐’로 명명됐지만 편의상 그렇게 한 것”이라며 “박원순 일대기를 다루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정 인물의 일생을 서사 방식으로 보는 이에게 전달할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확고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올 7월 다큐 개봉을 앞두고 일부에서 제기된 ‘2차 가해’ 비판에 “2차 가해는 1차 가해의 사실을 전제로 한다”고 그는 주장해왔다.
◆김대현 감독 “제작 의도 왜곡되지 않고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제작발표회에는 김 감독과 다큐의 토대가 된 책 ‘비극의 탄생’을 쓴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박 전 시장 팬클럽 관계자 그리고 다큐 제작 등과 관련해 법률자문을 맡은 이연주 변호사가 참석했다. 다큐 제작 위원회인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단체 관계자 등으로 보이는 10여명도 함께했다.
박 전 시장의 일대기가 아닌 그를 둘러싼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는 김 감독 설명은 2차 티저영상 공개 후 기자들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영상 공개를 앞두고 김 감독은 “제작 의도나 순수한 동기 자체가 왜곡되지 않고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저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기본적 개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큐 제작과 개봉이 2차 가해라는 정치권 등 비판에 맞서면서도, 무조건적인 박 전 시장 옹호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우회해 밝힌 것으로 보였다.
◆다큐 겨냥한 거센 비판 쇄도…“극악무도한 2차 가해 즉각 멈춰야”
국민의힘은 다큐 제작발표회 개최 소식에 “극악무도한 2차 가해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14일 논평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뻔뻔함을 보이는 모습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이같이 날을 세웠다. 윤 대변인은 김 감독을 겨냥 “‘1차 가해에 대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이들의 만행을 어디까지 두고 봐야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다큐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헌법적 인권 침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윤 대변인은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는 2차 가해를 즉각 중단하고 피해자와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다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16일 YTN에 출연해 ‘영화에 대해 그만들 하고 먼저 인간이 돼라’던 또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의 자기 발언을 놓고 “추모도 좋고 예술도 좋지만, 영화 내용이 2차 가해를 명백히 내포하는 내용일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돼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다큐멘터리가 개봉되고 나면 더 가혹해질 거라는 현실이 있다”며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연애가 가능하다는 그런 전제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집착으로 전개되는 현실이 소름 끼친다”고도 주장했다.
일부의 다큐 상영 중단 가처분 신청 예상에는 ‘지지하고 싶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류 의원은 “피해자가 온전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또 응원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이날 다큐 상영 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을 반복한 행위를 미화하고, 피해 여성의 인격을 짓밟는 세력에게 엄중히 경고한다”며 “박 전 시장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 의해 성희롱 가해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15일 정례브리핑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가해) 행위자를 옹호·두둔하는 행위는 2차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구성원 모두 피해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불리한 거 빼는 식의 다큐는 실패한다고 본다”
손 기자는 박 전 시장의 딸이 49재에서 울부짖는 모습 등을 보고 취재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손 기자는 제작발표회에서 “취재로 ‘잘못이 있으면 있다’, ‘클리어(해소)될 게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취재가 계속 이뤄졌다”며 일부의 ‘옹호 성격 아니냐’는 의문에 반박하듯 “(박원순) 시장에 불리한 걸 빼고 나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런 식의 다큐는 다 실패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발표회에 앞서 취재진에 자신의 명함을 제공한 손 기자는 다큐 해석 등에 관한 질문을 언제든 받겠다는 말도 전했다.
김 감독은 자신은 판사가 아니며 다큐로 뭔가를 판결하려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변론을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반문하고 싶은 건 죽음은 유죄 인정이 아니지 않느냐”며, 죽음의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죽음=유죄 인정’이라는 예단을 없애자는 게 김 감독 주장의 핵심인 셈이다.
계속해서 김 감독은 “3~5년 후에 보더라도 동의할 내용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최대한 감정적인 부분 등을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한 내용으로 (다큐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면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등 대화가 오가는 계기를 다큐멘터리로 제공하고 싶다는 말도 더했다. 나아가 “영화의 논제 자체를 부정하지 말자”며 “보고나서 후속 논의가 차분하게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시장은 부하직원인 서울시 공무원으로부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뒤인 2020년 7월9일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의 묘소는 지난달 1일 경남 창녕군에서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경찰이 박 전 시장 사망으로 강제추행 등 혐의 고소 사건을 ‘불기소 의견’(공소권 없음)으로 2020년 마무리한 뒤,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나서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언동을 인정한 바 있다.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을 냈던 유족 측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 후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인데, 지난달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족 측은 ‘원심이 반대 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아귀가 맞지 않은 참고인 진술에 근거하는 등 사실 인정에 오인이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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