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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피해는 지워지고 각색된다…피해 인지도 힘든 지경”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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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07 07:00:00 수정 : 2023-06-07 22: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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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울증 갤러리발 10대 여성 투신 사망 사건, 벗방 여성 BJ 피해 등을 통해 ‘여성 착취 사회’의 구조적이고 교묘한 실태가 또 한번 드러났다. 세계일보는 이를 조명하기 위해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시리즈를 준비했다. 여성의 취약성을 적극 이용하고 노리는 구조적, 집단적 병폐는 이미 취약성을 갖고 있는 여성(미성년자, 탈가정, 우울증 등)을 찾아내 사냥감 삼는 것은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 역시 예외로 두지 않는다. 벗방 사례에서 보듯 후자의 경우는 표면적으로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하게 한 뒤 이를 빌미로 다시 착취 구조에 밀어넣는다. 취약성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착취가 용이하도록 이중 삼중의 덫을 놓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사회가 여성을 이러한 약한 고리로 몰아넣고 방관함으로써 범죄 피해 등을 입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기획 시리즈 1편(참고 기사: “도와줄게” 헬퍼 가장한 어둠의 손길… 온라인 ‘멘헤라 사냥’ 활개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①])에서는 탈가정 여성 청소년과 정병계(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계정) 운영 경험이 있는 성인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러한 사회의 단면을 살펴봤다.

 

2편에서는 사태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우리 사회에 무엇이 시급한지 전문가 의견을 구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법 조력 활동가 ‘연대자 D’, 신체심리학자인 한지영 힐링모션 대표와의 질의응답 주요 내용을 싣는다.

 

Q. 물리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여성이 같은 상황인 남성에 비해 더 쉽게 강력범죄와 성착취 등에 노출되는 상황입니다. 범죄 피해에서 성별화 된 이런 특성을 보다 명확히 범주화하고 맞춤형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어보이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A. 연대자 D: 성별화된 특성을 반영해 해당 범죄들을 ‘여성 대상 폭력’으로 명명해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웨덴 등에서도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을 명시해, 해당 범죄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다룬 바가 있을 것인데, 지금 찾아보니 세계일보에서도 관련 기획기사(참고: [특별인터뷰①] 한국과 달리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 명시하는 스웨덴 정부)를 낸 것으로 나옵니다.

 

Q. 만나본 여성들의 얘기를 보면 대체로 경찰 등 사법기관이 제대로 사건을 처리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여전히 부족하고, 당사자들이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지요?

 

A. 연대자 D: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의 피해자일 경우 수사단계부터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 본인의 정신적 문제와 연관시키는 지점이 있고, 표면상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피해를 인정받기가 어려운 사례가 많습니다. 

 

실제 트위터를 거쳐 우울증갤러리로, 다시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피해자가 있는데, 해당 피해자도 수사기관에 찾아갔을 때 본인의 정신병력이나 그간 갤이나 트위터에서 활동한 내역 등으로 인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까 많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우울계, 병신계 등에서 활동하던 한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이후 수사기관을 찾아갔지만 피의자 측이 제출한 피해자의 트위터 활동 내역 등으로 인해 오히려 무고(동의한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고소한 것)의 피의자로 몰릴 뻔한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취약한 여성 대상의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이해도가 낮다보니 피해자들이 더 위축됩니다. 

 

디지털성착취, 성범죄의 상당수도 취약한 피해자에게 ‘상담’, ‘대화’ 등을 해준다며 접근(경찰 등 수사관 행세, 상담사 행세, 같은 성별의 또래 혹은 연상 행세, 같은 취약성을 가진 것처럼 행세 등)해 개인정보를 탈취한 후 벌어졌기 때문에 관련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Q. 온라인, 모바일, SNS 환경 등의 발달로 신종 그루밍/가스라이팅 범죄가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취약한 여성을 노린 성범죄에서 특히 연애와 성착취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범죄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A. 연대자 D: 한국은 OECD 중 우울증 유병률 1위인 국가이지만 치료율은 형편없이 낮습니다(미국의 6분의 1수준). 전제 자살율은 감소추세지만 10대, 20대 자살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20대의 경우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반을 넘은 상태(56.8%)입니다. 20대 여성의 경우 모방자살의 위험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구요. 

 

이런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이 마음 놓고 상담 및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도 않고, 정신적 취약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도 여전하다보니 취약한 이들의 상당수가 온라인 활동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 각종 온라인 플랫폼이 사회적 역할을 방기한 채 표현의 자유, 저작권 등을 내세워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문제까지 생기면서 소속감과 안정감 등을 느끼기 위해 온라인 활동을 하던 취약한 피해자들은 성착취, 성폭력에서 나아가 생명권 침해까지 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및 예방, 치료 시스템 정비이겠습니다만, 그와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 등 취약한 피해자 대상의 각종 성착취, 성범죄에 대한 교육(단, 피해자에게만 조심하라는 식의 교육이 아니라 가해자 범주에 속하는 이들에 대한 교육 등 포함), 수사기관, 법원 종사자 대상의 교육 등도 같이 가야 할 지점입니다.

 

‘그루밍 성범죄’ 등 취약한 피해자 대상의 성착취,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위장수사 등을 보다 적극적인 수사기법의 도입 등도 필요합니다. 취약한 피해자들을 노리는 가해자들은 해당 습벽을 고치기 어려운 데다, 그런 가해자들로부터 피해를 입게 되면 피해 회복이 상당히 더디고 힘듭니다. 따라서 ‘예방’ 차원에서 그런 무리들을 수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성착취, 성폭력 사범에 대한 처벌도 적절하게 뒤따라야 할 것(상당수 가해자들이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필요하다면 추가 입법을 통해 해당 성착취,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정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별개로 온라인 플랫폼 및 운영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보다 강하게 물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스마일센터 등 국가 주도의 피해자 지원(심리치료 등)을 피해자의 특성에 맞게 현실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스마일센터 등은 지원 회차가 줄어드는 등 운영에 개선이 필요합니다.

 

A. 한지영 대표: 이들은 가족과 절연한 경우가 많고, 또래와도 분리되어 있어 성착취 피해를 입어도 그것이 범죄라는 판단을 내릴 기준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범죄의 무대가 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단 미성년 여성 유저들에게 이러한 범죄 양상과 패턴에 대해서 충분히 알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판단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일반 대중보다는 심리적-사회적으로 취약한 미성년 여성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청소년에게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일부 대학에서 운영 중인 ‘또래 상담’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기본 상담 교육을 이수하고, 수퍼바이즈를 받으며 또래상담가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성인들에 비해 또래상담가들과는 비교적 편안하게 더 넓은 공감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는 피해를 피해로 인지하고 스스로를 구할 판단을 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울증 갤러리 유저들에게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또래상담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만 합니다. 우울증 갤러리 등의 이용자들이 1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므로 이 단계에서 그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최근 우울증 갤러리발 사건사고로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계속 보도되자 경찰에서는 오히려 우울증 갤러리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이 된다며 보도 자제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동의하시는지, 이 사건을 위해 만들어진 경찰 TF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A. 연대자 D: ‘노이즈마케팅’이나 ‘풍선효과’ 등은 ‘N번방’ ‘박사방’ 등 2020년 전후 디지털성착취, 성폭력 사건때도 수사기관이 내세우던 논리였습니다. 보도 자제는 해당 피해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일 경우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오히려 더 풍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시점이므로 수사기관의 이런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건 관련 언론보도의 상당수가 ‘제보자’에 의존해, 피해의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거나, 유사 피해 사례의 발굴에 치중한 점은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경찰TF의 경우 해당 범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시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제보’가 아주 중요한데, 피해당사자나 제보자에 대한 보호조치도 미흡하고, 관련 를랫폼에 대한 증거 수집 등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유사 범죄가 발생하는 다른 플랫폼 등에 대한 수사 확대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A. 한지영 대표: 우울증 갤러리 폐쇄 논의 등은 유의미한 지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커뮤니티가 유지가 되는 동안이 잠입수사 등의 개입이 가능한 기간일 것입니다.

 

이슈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는 동안에 신속하게 조사하고, 정확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범죄를 확산을 줄여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경찰의 현재까지의 대응에서는 (피해여성들이 생명을 잃은 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긴급성, 엄중함 등이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고, 이것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어서 또 다른 범죄자, 피해자에게 좋지 않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Q. '취약한 상태의 여성이 더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문제'에 대한 사회의 문제 의식 자체가 20∼30 여성 당사자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러다 보니 자극적인 뉴스 소재로만 소비되고 구조적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A. 연대자 D: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성착취, 성폭력은 깊은 상흔을 남길 뿐만 아니라 생명권 침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범죄임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수사 및 재판 과정으로 좁히자면 일단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지 후 수사기관에 찾아가는 것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취약한 피해자들의 경우 가족 등 주변에서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점을 감안해 피해 인지 후 상담, 상담 후 신고·고소, 신고·고소 후 피해 회복 및 지원 실질화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 한지영 대표: 사회적 권력이 없는 약자들의 피해는 지워지거나 각색되기 쉽습니다. 아동이 그렇고, 취약한 상태의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아동기 때부터 무해함과 여린 신체 등을 최고의 가치로 주입당한 여성들은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 취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의 인과관계를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좀더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우울증 갤러리에서 약물 강간, 연이은 성착취 이후에 자살을 감행한 미성년이 늘어나고 있어도 우리 사회의 어른들을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고 차분합니다.

 

어리고 취약한 여성들을 성인 남성들이 그저 먹잇감으로 보고 접근해 쓰고 버리는 반인륜적인 행태에 대해 이토론 정서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현상에 대한 심리-사회적 차원의 기획 기사가 필요할 지경입니다. 사건에 대한 포르노적인 시선을 내려두고 범죄를 종결시킬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기사들이 더 쏟아져 나와야 할 것입다.

 

Q. 그밖에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연대자 D: 우선 언론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부터 삼갔으면 합니다. 특히 이 사건처럼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은 죽음으로 몰려가는 것이지,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의 역할은 취약한 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는데, 한국 사회는 취약성을 보이는 피해자들의 죽음을 너무 쉽게 용인하고 잊어버립니다. 

 

삶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필멸합니다. 더 이상 ‘취약성’을 비정상으로,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지 말고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저출생 운운하기에 앞서 산 사람부터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①“도와줄게” 헬퍼 가장한 어둠의 손길… 온라인 ‘멘헤라 사냥’ 활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9

 

②“약자의 피해는 지워지고 각색된다…피해 인지도 힘든 지경”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00630

 

③수십개 실시간 ‘벗방’, 시청자 수천명…성착취 온상으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8

 

④“벗방 시청자는 숨은 ‘주요 공모자’다” 벗방피해자공동지원단 일문일답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23605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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