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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브랜드까지 되살려냈다 … ‘Y2K 트렌드’의 힘

입력 : 2023-06-13 06:00:00 수정 : 2023-06-13 13: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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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계 휩쓴 ‘복고 열풍’

배꼽티에 통바지·가죽 롱부츠 등
패션 넘어 광고·예능 등으로 확산

티피코시·잠뱅이 등 화려한 부활
사라진 디카·캠코더 덩달아 인기

전문가 “유니크한 것 추구 Z세대
경험 못한 아날로그 감성에 관심”

‘두 남자가 헤드폰을 낀 채 음악에 빠진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곧 여자의 눈앞으로 총알이 느린 속도로 날아가고, 총을 맞은 남자가 그 자리에 쓰러지며 가수 조성모의 ‘투 헤븐’(To Heaven)이 흐른다.’

 

X세대였던 40대들에게 익숙한 이 장면은 쇼핑 플랫폼 ‘코오롱몰’이 최근 선보인 광고영상의 일부다. 뮤직드라마 속 여주인공 주현영은 큼지막한 헤드폰과 링 귀고리, 골반까지 내려 입은 로우라이즈 청바지로 2000년대 유행 패션을 완벽하게 고증했고, 오글거리지만 아련한 감성과 저화질의 뿌연 필터는 당시 뮤직비디오 공식을 그대로 살렸다.

 

패션계에서 시작된 Y2K, 이른바 세기말 트렌드가 광고와 가요계, 예능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Z세대(90년 중반∼2000년 초 태어난 세대)의 열광 속에 1990년대를 주름잡던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 IT 발전 속에 도태됐던 제품들까지 부활하고 있다.

1998년 조성모의 데뷔곡 ‘투헤븐’의 뮤직비디오를 모티브로 한 코오롱몰의 광고 캠페인 ‘Y2K(Year 2 Kolon mall). 코오롱FnC 제공

◆대중문화계 사로잡은 세기말 감성

Y2K는 연도를 뜻하는 ‘Year’, 숫자 ‘2’, 1000을 나타내는 ‘Kilo’를 결합해 2000년을 의미하는데 주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통칭한다. 당시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던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00’만 인식해 1900년과 혼동하면서 대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와 종말론이 퍼졌다.

그 혼란과 세기말 감성 속에 꽃핀 패션이 Y2K이다. 배꼽티에 통 넓은 청바지와 큰 주머니가 달린 카고 바지, 벨벳 트레이닝복, 니삭스(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와 가죽 롱부츠 등이 대표적이다.

‘유행은 20년마다 돌아온다’는 공식을 증명하듯 2∼3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Y2K 스타일은 지난해 걸그룹 뉴진스의 데뷔를 기점으로 패션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캠코더로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Ditto(디토)’. 뮤직비디오 갈무리

4세대 걸그룹인 뉴진스는 스타일링부터 음반 구성, 음원까지 뉴트로(New+Retro·복고풍의 재해석)에 기반해 선보였다. 긴 생머리에 스포티한 의상, 옅은 화장으로 뽐낸 청순미는 1990년대 말을 풍미한 1세대 걸그룹 S.E.S.를 떠오르게 했다. 또 CD와 CD파우치, 책받침 등 레트로 굿즈(goods)도 출시했고, ‘Ditto’(디토) 뮤직비디오는 세기말 학창 시절을 콘셉트로 한국식 교복과 캠코더까지 등장시켰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뉴진스가 복고에 집중하는 것은 청춘의 아이콘이 되려는 것”이라며 “나이든 사람들에겐 기억 속의 청춘,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금 갖고 있는 젊음을 함께 느끼게 해 세대적으로 폭넓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컴백한 (여자)아이들도 의상뿐 아니라 신곡 ‘퀸카’의 뮤직비디오를 2000년대 유행했던 형식으로 제작했고, 더뉴식스의 ‘킥 잇 포 나우(Kick It 4 Now)’, ATBO의 ‘넥스트 투 미(Next to me)’ 등의 영상 콘텐츠 역시 과거 스타일의 자막, 저화질, 4:3 비율 등으로 2000년대 느낌을 구현했다.

Y2K는 리메이크 코드로도 인기여서 보이그룹 NCT 드림은 1996년 발표된 H.O.T.의 ‘캔디’를, 가수 테이는 2003년 밴드 버즈의 발매곡 ‘모놀로그’를, 걸그룹 에이핑크 출신 정은지도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리메이크했다.

Y2K 열풍은 원조 스타들을 직접 소환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김태호 PD가 새롭게 선보인 tvN ‘댄스가수 유랑단’은 그 시대를 풍미했던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가 전국에 공연을 다니며 당시 유행했던 노래와 패션을 그대로 선보이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1990년대 농구 만화 ‘슬램덩크’가 영화로 돌아오고, ‘타이타닉’도 25년 만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은 가수 김완선, 이효리, 보아 등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통해 Y2K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tvN 제공

◆죽은 브랜드도 되살린 Y2K의 힘

복고 유행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각각 다른 시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을 뿐 복고가 유행하지 않은 시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Y2K 스타일 열풍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패션 브랜드와 각종 아날로그 제품까지 부활시켰다. 이른바 ‘레저렉션(resurrection·부활) 패션’이다.

2008년 철수했다가 지난 4월 15년 만에 재론칭된 LF의 패션브랜드 ‘티피코시(TIPICOSI)’가 대표적이다. 티피코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광고모델로 나서 화제를 모았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와 ‘윤진’의 커플티로도 등장했다.

Y2K 패션 인기에 힘입어 15년만에 부활한 패션브랜드 ‘티피코시’. LF 제공

LF 관계자는 “요즘 인기인 스트릿 패션 브랜드를 강화하려다가 결이 비슷한 자사브랜드 티피코시를 새롭게 재해석해 되살리기로 했다”면서 “티피코시를 기억하고 있는 X세대에게는 향수를, 새로움을 갈망하는 Z세대에게는 호기심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청바지 브랜드 ‘리(Lee)’,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토종 청바지 브랜드 ‘잠뱅이’, 코오롱FnC의 스포츠 브랜드 ‘헤드(HEAD)’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디지털 발달로 도태됐던 IT 기기들도 Z세대에게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1999년 엄정화가 ‘몰라’를 부르며 선보였던 헤드폰 패션은 최근 MZ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40∼50대가 콩나물만한 무선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고스펙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라졌던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와 캠코더도 인기다. 뉴진스 등의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프라다, 미우미우 등 럭셔리 브랜드들의 시즌 화보에도 똑딱이 디카, 캠코더, 폴더폰, 헤드폰 등이 소품으로 등장했다.

정 평론가는 “Y2K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과도기적 시점이기도 하다”면서 “새롭고 유니크한 것을 추구하는 Z세대가 이미 익숙한 디지털과 경험해 보지 못한 아날로그 감성이 겹쳐진 Y2K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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