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반역죄로 기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돈 받고 유대인 팔아넘긴 네덜란드 바인레프
나치 친위대 수장 마사지사로 부역 케르스텐
모두 조국·민족 배신하고 윤택한 삶을 누려
저서 남기고 모험·용기로 삶을 포장하기도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이안 부루마 지음/박경환·윤영수 옮김/글항아리/2만5000원
“너는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너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가 될 것이다.”
청나라 숙친왕은 열네 번째 딸이 일곱 살 되던 해 일본인 친구 가와시마 나니와가에게 입양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이가 훗날 ‘동방의 마타하리’로 불린 일본 스파이 가와시마 요시코(중국 이름 둥전)다.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세우는 데 기여하고 상하이 사변에도 개입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으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중국에서 반역죄로 기소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대인이면서 유대인과 비유대인 어디에도 어우러지지 못하다가 돈을 받고 유대인들을 팔아 넘긴 네덜란드의 프리드리히 바인레프, 인종 학살을 자행한 나치 친위대(SS)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의 개인 마사지사로 나치 체제에 부역한 독일계 핀란드인 펠릭스 케르스텐도 요시코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점령국 출신이지만,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윤택한 삶을 살았다. 네덜란드 출신 언론인이자 아시아 연구자인 이안 부루마의 신간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글항아리)은 일본과 중국, 독일, 네덜란드를 오가며 동시대를 살아간 세 부역자의 행로를 나란히 펼친다. 저자는 많은 부역자들 가운데 이들을 선택한 이유로 “세 사람이 부역자의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과 박해와 대량학살의 시대에 자신의 자아를 재창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요시코는 만주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네 살 될 무렵 청이 멸망하면서 가족이 만주 지역으로 쫓겨났다. 숙친왕은 청나라 수복을 위해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믿고, “청의 부활을 위해 필요한 희생”이라며 딸을 일본인 의형제에게 ‘선물’로 보냈다.
요시코는 양부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일본 학교에서는 ‘이호진’(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양부와 어울리던 퇴폐적인 우익 건달들의 구애로 괴로워하던 요시코는 아예 삭발하고 남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양부를 떠나기 위해 몽골인과 결혼해 중국 상하이로 이주했지만, 3년 만에 이혼하고 사교계에 입성한다. 그가 언제부터 일본 스파이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 장교들뿐 아니라 여성들과도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중국 국민당 고위 인사들을 밀고하고, ‘마지막 황제’ 푸이를 도와 만주국을 세우는 데도 일조했다. 만주국에 대한 영웅담이 필요했던 일본 언론은 그를 동방의 마타하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중국에서 물러가자 리샹란, 도쿄 로즈와 함께 스파이이자 부역자로 고발됐다. 요시코는 일본의 중국 침략을 도운 죄, 나라를 팔아넘긴 죄, 일본의 대표적 전범들과 잠자리를 한 죄로 서른세 살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재판에는 5000여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는데 요시코는 자신의 비서에게 보낸 편지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줌의 위안을 주기 위해” 자신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고 썼다. 처형당한 뒤에도 그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일본에서 요시코의 이야기를 다룬 숱한 소설과 영화, 뮤지컬에서는 그가 처형당하기 직전 금괴 100개를 받은 다른 여성과 바꿔치기한 것으로 나온다.
유대인인 바인레프는 돈을 받고 유대인들을 나치에 팔아넘겼다. 강제수용소에 끌려갈까 봐 두려움에 떨던 유대인들에게 폰 슈만이라는 독일 중장의 도움으로 안전한 국가로 보내줄 수 있다며 기차 탑승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 사람당 100길더를 받아 35만길더를 챙겼는데 요즘 가치로 약 300만달러에 달한다. 물론 폰 슈만이란 인물도, 기차도 없었다. 게다가 이민 목적의 신체검사가 필요하다며 여성들을 추행했다. 인도네시아로 넘어가 포교 활동을 하면서도 여신도들에게 비슷한 짓을 하다가 기소됐다.
바인레프는 자신의 사기 행각에 대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숨거나 버텨서 생명을 구하도록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했다.
케르스텐은 헬싱키의 군인병원에서 핀란드식 마사지 기술을 익힌 뒤 베를린으로 넘어가 코 박사라는 중국 남자에게 티베트식 마사지를 배웠다. 동서양 마사지 기술을 모두 익힌 그는 ‘신비의 치료사’로 불렸다. 유럽 귀족들과 고관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 돼 큰 돈을 벌었다. 나치 친위대 수장이자 유대인 학살 최고 책임자였던 힘러도 그를 찾았다. 그는 힘러의 복통을 고쳐 주며 개인 마사지사이자 심복이 돼 나치에 부역했다. 그러나 전쟁 말기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케르스텐은 노선을 바꿔 힘러를 설득해 수천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에서 구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핀란드의 마사지사가 네덜란드 국민을 구한 영웅으로 윤색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 명의 부역자 모두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겼으나 이국적인 모험이나 위대한 용기, 장엄한 저항자로 자신의 삶을 윤색했다. 저자는 역사적 기록 및 증거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이들이 한 거짓말조차 동시대 사람들이 끔찍한 시기를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 사람 중 누구도 완전히 타락한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극심한 사회·정치적 분열의 시대, 집단적인 정체성이 강요되는 사회가 낳은 부역자의 삶을 반추하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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