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울산시 남구 삼산동에 있던 민간 비행장(부지 면적 1만9800㎡)은 ‘수탈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군용으로 탈바꿈하면서다. 일본군은 울산 주민들에게 뺏은 쌀 같은 물품을 울산 한 인공동굴에 모아뒀다가 이 비행장으로 옮겨 자국 등으로 날랐다. 농작물은 물론이고, 소나무를 짠 기름(송탄유), 제기로 쓰던 놋그릇, 비녀, 머리카락까지 가져갔다. 동굴에 식량이 쌓이면 쌓일수록 배가 고프고, 헐벗은 울산 주민들은 장생포 바닷가로 나가 떠밀려온 수초를 주워다 말려 먹었다.
이 일제수탈의 근거지인 울산의 인공동굴이 광복의 달인 8월을 맞아 주목받고 있다. 역사의 흔적을 직접 보고, 동굴체험 같은 이색적인 경험을 하려는 방문객들이 몰려들면서다.
인공동굴은 울산 남구가 2017년 150억원을 들여 새롭게 단장했다. ‘태화강동굴피아’라는 이름을 내걸고,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창고로 쓰인 인공동굴 4개를 기념시설(총면적 1만9800㎡)로 꾸몄다.
16일 찾은 동굴피아. 평일 오후인데도 삼삼오오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동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동굴이다보니 낙석과 위에서 떨어지는 물 등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장비다. 60m 길이의 1동굴은 일제 수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동굴을 팔 때 썼던 장비, 강제노역 조형물, 수탈품 중 하나였던 송탄유 드럼통 등이 전시돼 있었다. 일제강점기 울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과 지도, 신문기사 등도 액자로 걸려 있었다. 한 관람객은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2~4동굴은 이색 체험공간이다. 조명으로 꾸며진 ‘은하수길’을 지나면 ‘고래’를 테마로 한 디지털고래아쿠아리움이 나온다. 고래 홀로그램과 직접 색칠한 바다생물 그림을 화면에 띄워볼 수 있는 체험시설 등이다. 동굴 여러 개를 연결해 설치된 광장에는 곤충체험관과 무인카페가 있다. 곤충박제나 살아있는 곤충을 만나볼 수 있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동굴에 사는 박쥐 표본과 움직이는 커다란 박쥐 모형도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레이저에 닿지 않고 탈출하면 성공하는 ‘동굴탈출존’은 인기있는 코스라고 한다. 16m 길이의 4동굴엔 ‘고래유등관’이 있다. 고래와 정어리떼, 가오리 등을 형상화한 등을 천장에 달아 바다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동굴피아는 문을 연 이듬해인 2018년엔 8만6000여명이 찾았다. 그러다 2020년엔 3만2000명으로 찾는 발길이 줄었다. 코로나19로 5개월간 휴관한데다 볼거리가 부족했던 탓이다. 남구는 2022년 1~5월 4억원을 들여 볼거리, 체험거리를 보완했다. 2021년 7만2000여명이던 방문객은 지난해 14만2000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 들어선 7월까지 8만3000여명이 왔다. 동굴피아 관리자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은 편이다”며 “광복절엔 1000명 넘게 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동굴피아를 찾는 건 아픈 역사를 알아볼 수 있어서다. ‘다크 투어리즘’과 비슷한 맥락이다.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하면서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남구 관계자는 “지난해 8월에도 2만8000여명이 찾는 등 ‘광복의 달’에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며 “동굴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도 있고 해서 더 많이 찾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화강동굴피아 1동굴(길이 60m)에는 ‘울산동굴’이 수탈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전시물이 있다.
동굴 여러 개를 연결해 만든 광장엔 이색체험 공간으로 곤충체험관 등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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