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곡물협정 중단·각국 수출제한
다양한 글로벌 요인 복합적 작용
폭우 등 기상여건 악화도 리스크
여전히 전체 소비자물가 웃돌아
식료품 비중 높은 저소득층 부담
정부, 물가 흐름 면밀한 대응 필요
‘흑해곡물협정’ 중단 등에 따른 식량 안보 우려와 이상기후 영향으로 국내외 식료품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쌀을 제외한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식량가격 상승이 가공식품·외식 물가에 영향을 미쳐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28일 ‘국내외 식료품 물가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 보고서에서 최근 집중호우 등 기상여건 악화로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다 흑해곡물협정 중단 등이 겹치면서 식료품 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선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한 합의인 흑해곡물협정에 대해 지난달 17일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했다.
보고서는 “국내 식료품 물가 추이를 보면 최근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가격 상승도 소비자물가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주요국 역시 지난해 이후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면서 식료품발(發) 물가 불안, 즉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급등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다. 영국의 경우 지난 3월 식료품 물가가 19.2% 상승해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국내외 식료품 물가의 높은 상승세에 각국의 작황 등 수급 상황, 인건비 같은 국가별 여건 외에도 글로벌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 병목 현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곡물·비료 공급 차질, 각국 식량 수출 제한 등 글로벌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이 50개국 데이터를 이용해 식료품 물가 상승 요인을 ‘글로벌 공통 요인’과 ‘국별 고유 요인’으로 분해해 본 결과, 글로벌 요인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문제는 글로벌 요인들이 향후에도 우리나라 식료품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흑해곡물협정 중단 및 인도의 쌀 수출 금지 등에 따른 식량 안보 우려로 국내외 식료품 물가 오름세 둔화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 상승 현상), 이상기후 등을 국제식량가격의 상방리스크로 꼽았다.
보고서는 “올해 중 강한 강도의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거 사례를 보면 엘니뇨 기간 이후에는 국제식량가격 상승기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1도 상승할 때 평균적으로 1∼2년의 시차를 두고 국제식량가격이 5∼7% 상승했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식량가격 변동이 국내 물가에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식량가격은 시차를 두고 국내 가공식품 가격 및 외식물가에 파급되는데, 한은 분석 결과 가공식품은 11개월 후에, 외식물가는 8개월 후에 영향이 최대로 나타나며 국제식량가격 급등기에는 시차가 단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보고서는 “가공식품 등 식료품과 외식물가의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향후 국내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계지출 중 식료품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 부담이 증대하고, 실질구매력이 축소될 수 있는 만큼 후 식료품 물가의 흐름과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물가 안정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례회동을 갖고 “추석 물가 안정에 최우선 역점을 둬 달라”고 한 총리에게 당부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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