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후보 “李 구속돼도 사퇴 안 돼”
가결표 의원엔 “정치적 책임 져야”
우원식·남인순 등 후보 친명 일색
계파 갈등 봉합될지 향방 주목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26일)가 친명(친이재명)계만의 4파전 구도로 치러지게 되면서 당 지도부는 물론 원내대표단까지 친명 일변도로 흐르게 됐다. 이재명 대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도부 내 주도권을 쥔 정청래 최고위원은 원내대표 후보들에게 ‘이재명 수호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하는 등 사실상 이 대표를 향한 ‘충성 맹세’를 요구해 들끓는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이 대표의 공언이 자신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현실화했다.
◆대놓고 ‘충성 맹세’ 요구
정 최고위원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원내대표 후보들에게 “‘이 대표를 끝까지 지키겠다’, ‘당원들과 함께 민주당 깃발을 들고 전진하겠다’고 많은 당원, 국민들의 바람에 호응해 줬으면 한다. 이것을 공개 선언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친명 후보’ 선출이 기정사실화한 원내대표 선거를 하루 앞두고 다시금 이 대표를 향한 ‘충성 맹세’를 요구한 셈이다.
정 최고위원이 이처럼 최고위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지난해 8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최고위원 중 최다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단식 끝에 입원했고 박광온 전 원내대표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정 최고위원이 ‘수석 최고위원’격으로 당 회의를 주재하는 등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더라도 정 최고위원이 당분간 ‘상왕’노릇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행 당헌 당규상 최고위의 요구 또는 의원총회 재적의원 3분의 1(56명) 이상이 찬성하면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할 수 있다. 당내 구도상 친명계가 결집하거나 ‘친명 최고위’가 마음만 먹으면 원내대표의 지위가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표의 회복치료 장기화 또는 구속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앞으로도 정 최고위원의 입김이 당내에 크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명계 송갑석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지도부 내 친명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채진원 교수는 “이 대표와 정 최고위원을 보면 과거 당 총재와 총재 비서실장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며 “총재 중심의 권위주의적 당 운영을 바꾸고자 ‘원내총무’를 ‘원내대표’로 격상하는 등 ‘원내정당화’가 이뤄져 왔는데, 이 대표와 정 최고위원이 시대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명 후보들 “이재명 중심 단결”
원내사령탑 후보들도 ‘이재명 수호’ 의지를 드러내는 등 당 지도부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 대표 체제에서 핵심 당직인 정책위의장에 임명된 김민석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 중심으로 총선을 치른다는 원칙을 명확하게 공동 천명하길 바란다”고 경쟁 후보들에게 촉구했다. 또 “이 대표가 일시적으로 구속되더라도 대표의 사퇴 이유가 될 수 없고, 당은 계속해서 구속적부심, 보석 등 정권에 대항할 것을 천명해야 한다고 본다”고도 했다.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소속 의원들에 대해선 “이 대표에 대한 사퇴 의도를 가졌던 정치적 책임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했다.
홍익표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대표의 구속심사와 원내대표 선거가 동일한 날 진행되는 점을 거론하며 “(구속영장) 기각이 당연하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당대표를 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단결된 힘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홍 의원은 지난 4월 원내대표 선거 때도 친명계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낙선했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 만큼 정견 발표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원식 의원과 남인순 의원은 두드러진 메시지를 내고 있지 않지만 다수 의원의 지지를 얻고 있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당내 평가다.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의 표심이 남 의원에게 쏠리는 가운데, 위기 속 안정적 원내 체제 구축을 위해 한 차례 원내대표를 지냈던 우 의원이 다시 한 번 원내사령탑에 오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여론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이 이준석 전 대표 체제 붕괴 후 ‘리더십 재건’을 위해 원내대표를 지냈던 주호영 의원을 재차 원내대표로 추대한 전례가 있는 점도 우 의원한테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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