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논의 한 번 없다 불쑥 추진”
정부 “합의 구속력 없어” 강행 뜻
“비급여 증가 국민 설득도 과제”
정부가 의료계 반발에도 의대 정원 확대라는 강수를 두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의료계 파업→정책 백지화’라는 과거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 단체는 정부의 발표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이지만, 구체화된다면 파업 등 ‘강경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1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정부 의대 증원 계획은 2차례 무산됐다. 복지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대 정원이 10%를 줄어든 지 12년 만인 2012년 약 500명 수준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당시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 대해 의사·병원 단체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며 계획을 백지화한 바 있다.
이후 8년 뒤인 2020년 문재인정부는 매년 4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공의 파업과 진료 거부, 의대생 국시 거부 등으로 의료계가 강력히 대응한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진료 공백 사태가 빚어지자 결국 물러섰다.
당시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와 합의(9·4의정합의)를 체결했다. 합의문에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하는 대신 의사단체와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 의대 증원 등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이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측은 지금까지 총 14차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가 열어 주요 쟁점을 논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필수·지역의료에 대한 부분을 주로 논의했다”며 “지난달 14차 회의에서 복지부가 의대 정원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싶다고 요청을 해왔기 때문에 다음 달 초 예정인 15차 회의 때부터 이 문제를 논의하는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복지부로부터 의대 증원 관련 자료나 제안은 전혀 없었다”며 “중간 과정을 다 건너뛰고 갑자기 ‘1000명 증원’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한다면 정상적인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이 맞나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의대 증원에 대해 9·4의정합의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한 불신 해결을 위해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눈치를 보면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국정과제였다는 점과 증원 찬성 여론 등을 업고 강행하는 분위기다. 한 정부 관계자 역시 최근 “(9·4의정합의가) 구속력이 있는 합의는 아니다”며 “의사들이 반대한다고 의대 증원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는 “의대 증원 이슈는 당사자인 의사와 합의해서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이 피부로 느끼면서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성인 연세대 교수(한국보건의료포럼 부대표)는 “이번 방안에 공공의대 공정성 논란 등이 없다면 의대생들은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늘면) 건강보험 의료비뿐만 아니라 비급여 진료비가 많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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