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은 없다”… 친박계 무소속 출마, 득일까 독일까 [뉴스+]

“정치적으로 친박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과거 친박계 인사들이 출마해 재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라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상 자신을 위시한 정치세력과의 종말을 고한 그는 “저와 연관된 것이란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까지 언급했다. 즉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친박계 의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특히 차기 총선 승리에 여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도 깔려있다. 하지만 이런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친박계 인사들은 차기 총선을 향해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다. 과연 친박계의 재등장은 국민의힘에 득일까, 독일까.

지난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함께 참배한 뒤 헤어지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경환 총선 출마부터 회장까지 온갖 억측 난무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친박(친박근혜) 좌장’ 격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총선출마를 확정하는 분위기다. 자신의 옛 지역구인 경북 경산시에서 무려 5선을 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전 부총리 측은 공식적으로 총선 도전을 단 한 번도 선언한 적이 없다. 지역 정가를 비롯해 친박계 안팎에서 최 전 총리의 출마를 공식화하곤 있지만, 한 차례도 그의 입에서 출마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은 없다.

지역 정가에선 최 전 부총리의 출마를 내다보고 있지만, 국영기업과 정부 관련 협회 회장으로 갈 것이란 이야기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 경북 지역 정가에 정통한 인사는 “최 전 부총리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출마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론에 도전을 선언한 적은 없지 않으냐”며 “결국 총선에 나설지, 또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출마한다면 도전 시기는 언제가 좋을지 등을 저울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 전 부총리의 사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 격인 유영하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친박 인사들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친박은 없다’고 이야기했다”며 “친박이 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체가 없는 친박’이기 때문에 어폐가 있다고 본다. 정치하고 싶으면 본인들이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까닭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본인이 느꼈던 환멸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더라"며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가 없다가 갑자기 연락이 오면 진정성이 느껴질 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미의 친박은 없다’며 22대 총선 때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나설 것이라는 관측과 자신을 연결하는 것에 선을 확실히 그은 것이다. 또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일부 핵심 친박계 인사들에 대해 심정적으로 박 전 대통령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장관, 김관진 전 실장, 박흥렬 전 경호실장 등을 제외하곤 특별히 당시 인사들과 접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 최 전 부총리의 총선출마에 대해 온갖 억측이 나오는 사이, 국민의힘은 이런 최 전 부총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6월 최 전 부총리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최 전 부총리는 ‘보수 연합군’을 언급하며 내년 4·10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수 대통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를 두고 선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당을 분란으로 만든 이준석 대표를 친박계 좌장격이 만나 총선 승리를 논했다는 것 자체가 신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며 “결국 당 입장에선 득이 아닌 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무소속 출사표는 국민의힘엔 ‘독’

한 중진의원의 이야기처럼 친박계의 등장은 국민의힘에 독일까. 우선 최 전 부총리를 비롯해 친박계 인사들은 여전히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해 각종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등장은 오히려 야당에겐 호재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얼마 전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홍남기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소환 조사한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최 전 부총리를 물고 늘어졌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나라 장기재정전망을 낙관적으로 내놓은 것을 문제 삼으며 홍 전 부총리가 아니라 최경환 전 부총리를 먼저 조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내놓은 경제지표는 각종 변수에 따라 변동 폭이 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친박계 인사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실제 친박계 인사들이 출마를 저울질하는 곳은 야당과의 접전지가 아닌 이른바 보수 안전지대인 TK(대구·경북) 지역구다. 최 전 부총리가 출마를 저울질하는 경북 경산에서부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고향인 경북 영주, 유영하 변호사가 이미 지난 지방선거 당시 시장 출마를 선언했던 대구까지, 모두 국민의힘 입장에선 공천이 곧 당선인 곳이다.

내년 총선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친박계 인사들이 당선을 위해 TK지역으로 향하는 사이 수도권 접전지에선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들의 무소속 선택지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친박계 인사들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은 만큼 TK에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승리를 확신한다. 특히 이미 지역에서 4선을 한 최 전 부총리의 경우 조직도 확보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친박계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 또한 국민의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차가운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으로선 지지층 결집이 절실한데 오히려 갈등이 생길 경우 이는 표를 분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수 결집을 이완시키고 중도층 표심 이탈을 가속화하는 것은 국민의힘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국민의힘의 표를 분산시킬 수 있다”며 “현재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을 둘러싼 신당창당 논란 등 갈등 요인이 산재한 상황에서 친박계까지 무소속으로 나오면 사실상 국민의힘의 결집력을 잠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수도권에서 총선을 이끌 인재를 확보해 승부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TK에서 갈등이 생기면 곤란하다”며 “결국 국정농단 사태와 친박계에 대한 비판이 수도권에서도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