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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영하 20도’ 강추위에도 ‘먹고사느라’ 버티는 야외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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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23 18:00:00 수정 : 2024-01-23 18: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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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까지 강추위 지속 전국 곳곳 영하 10도

23일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 영하 14.0도, 동두천 영하 15.7도, 대전 영하 12.3도 등으로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많은 시민들이 밖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고 이동도 피하려 했지만 실내에서 일할 수 없는 옥외노동자들은 생계 앞에서 각종 방한용품에 의지해 추위를 견뎌야 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23일 서울 서초구 한 식당 주차관리인이 난방 기기에 손을 대고 있다. 주차관리인은 “직원 3명이 돌아가며 작은 난방 기기 하나에 의존해 추위를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안경준 기자

시민들은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 패딩 모자를 뒤집어 쓰고, 목도리와 귀마개, 장갑으로 무장한 채 출근길에 올랐다.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시민들은 연신 “춥다”고 말하며 지인의 안부를 물었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는 시민들의 안경에는 김이 서렸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추위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꺼내 쓴 시민들도 많았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역을 빠져나온 김모(30)씨는 “오늘 춥다는 예보를 봐서 아침에 핫팩을 챙기고 오랜만에 마스크도 썼다”며 “근데도 집에서 나올 때 너무 추워서 ‘러시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모(32)씨 역시 “얼굴이 시려 마스크를 썼는데 지하철에 미세먼지 심한 날보다 마스크 쓴 사람이 많더라”며 “날이 추워서 씻기 더 싫길래 머리도 안 감았다”고 웃었다.

 

김모(33)씨는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날은 자차를 탔다. 김씨는 “밖에 다니기 너무 추울 것 같아 고민없이 오늘은 차를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추위가 다른 지역 얘기 같던 부산도 이날은 아침 최저기온도 영하 7.3도까지 떨어졌다. 부산 직장인 조성우(30)씨는 “부산은 특히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라 장갑이나 목도리 같은 방한 의류를 평소에 구비해 놓지 않았는데 오늘은 급한 대로 핫팩이라도 챙겨 나왔다”며 “바람이 불지 않는 역사 안도 추워 지하철 기다리는 게 힘들었고 최대한 야외활동을 피할 생각”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에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음식점에는 직접 먹으려 방문한 손님 외에도 배달원들이 계속 들락날락거렸다. 성동구 한 음식점 직원 이모(29)씨는 “날이 추워 어제부터 식당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줄고 배달이 평소보다 많아졌다”며 “추운 때면 확연히 배달이 많아진다”고 전했다.

 

23일 서울 서초구 한 식당 주차관리인 정모(55)씨가 차량이 올 것에 대비해 서 있다. 정씨는 추운 날씨지만 가장이기에 아프더라도 약을 먹고 일하러 나온다고 전했다. 안경준 기자

거리에 이동하는 사람이 줄어 상점을 찾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중구 서울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현숙(68)씨는 연신 추위에 다 얼어붙은 생선을 떼기 위해 칼등으로 얼음을 깼다. 김씨는 “이렇게 날이 추우면 다 얼어서 미끄러지고 손질하기 어렵다”며 “오리털 바지와 외투를 입고 완전무장하고 나왔는데 추워서 손님도 없다”며 골목을 쳐다봤다. 두 점포에 한 곳 꼴로 문을 열지 않았는데 김씨는 “추워서 쉬는 점포들”이라고 전했다.

 

서초구에서 붕어빵을 판매하는 김모(42)씨도 “이날은 그냥 나오지 말까 생각했지만 일하러 나왔다”며 “추운 날씨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아 매출이 30% 정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야쿠르트 판매원 박모(71)씨는 모자 세 겹과 마스크를 쓰고 서초구 교대역 앞에서 야쿠르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박씨는 오전 5시 출근해 8시까지 야쿠르트 배달을 마치고 점심 배달 전까지는 길목에서 판매를 한다. 박씨는 “등에 핫팩 두 개를 붙이고 주머니에도 각각 한 개씩 핫팩을 넣어왔다”며 핫팩을 꺼내 보였다. 두꺼운 장갑을 낀 탓에 박씨는 야쿠르트를 결제하며 카드 결제 단말기를 여러 번 누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추위에 매출도 얼어붙어 박씨는 “매번 사가던 사람도 안 올 정도로 이날은 안 팔린다”고 하소연했다.

 

인천에서 차량정비소와 세차장을 운영하는 유모(58)씨는 “바퀴 등에 나사를 조일 때 에어 컴프레서를 이용하는데 겨울철에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나사가 헐겁게 조여지는 경우가 있어 주의한다”며 “퇴근할 때는 세차장에 있는 호스에 부동액을 넣어 얼지 않게 하고, 출근해서는 뜨거운 물에 호스를 담가 보관해 추위에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올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친 23일 야쿠르트 판매사원인 박모(71)씨가 서울 서초구 교대역 앞에서 이동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박씨는 한파에 대비해 모자 세 겹을 쓰고 핫팩 4개를 챙겼다고 전했다. 안경준 기자

강추위에 쪽방촌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 공터에는 평소라면 거리에 나와 있던 이들이 추위를 피해 공용화장실에 몰려 있었다. 한 쪽방촌 주민은 손 건조기를 연신 작동시키며 추위를 달래기도 했다. 쪽방촌 주민 홍모(64)씨는 “골목에 세탁기가 나와 있는 집이 더러 있는데 동파로 빨래를 못 한다”며 “겨울철 화장실 변기 물이 얼어붙는 건 쪽방 주민에겐 일상이고 이럴 땐 집 화장실을 못 쓰고 공용화장실·목욕탕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외에 야외 근무가 기본인 옥외노동자는 추위에 더 취약했다. 영등포구에서 주차관리일을 하는 김모(43)씨는 “휴게 부스가 있지만 차가 계속 들어오는데 내내 있긴 어렵다”며 “그나마 부스도 없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인근 상가에서 서서 잠깐씩 몸을 덥힌다고 들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배달일을 하는 한모(29)씨는 “이런 날엔 넘어져도 더 크게 다친다”며 “염화칼슘이 뿌려지지 않은 골목길을 달릴 땐 혹시 눈에 안 보이는 얼음을 밟고 미끄러질까 온몸을 긴장하게 된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한파에 취약한 건설현장 등을 점검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8년 12월부터 최근 5년간 한랭질환이 발생한 야외작업자는 43명으로 동상·동창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이 중 31명(72.1%)은 이 같은 한랭질환이 1월 중 발생했으며 직종으로는 야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비계공 등 건설업 종사자와 환경미화원 등 위생업 종사자가 많았다.

 

이번 추위는 주 후반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25일까지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 특히 경기북부와 강원 및 경북 산지 등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상태가 계속된다. 26일쯤이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낮 기온은 영상권을 회복하는 정도로 기온이 오르겠다.


박유빈·조희연·안경준·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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