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관문 우유투입구에 불을 붙인 5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조승우 부장판사)는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A씨(59)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작년 10월 술을 마시고 집에 간 A씨는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A씨의 폭력을 우려한 부인 B씨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기 때문이다.
현관문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A씨는 “죽여버린다, 불 지른다”고 외치며 일회용 라이터로 현관문 아래쪽 우유투입구에 불을 붙였다.
B씨가 물을 부은 덕분에 불은 금새 꺼졌지만 현관문 내부가 그을렸다.
검찰은 사랆이 현존하는 건물에 불을 붙이려 했다고 보고 A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에게 현주건조물 방화의 고의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현주건조물방화죄가 성립하려면 불이 매개물을 떠나 건물 자체에 독립해서 타오를 가능성을 인식·용인하는 ‘고의’가 입증되어야 하는데 A씨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불을 붙인 이유는 배우자에게 겁을 줘 현관문을 열고 주거지로 들어가기 위함이라고 봐야 한다”며 아파트 건물에 독립적으로 타오를 정도의 불을 붙인 것은 아니었다고 봤다.
또 “사건 당시 집에는 아내뿐 아니라 딸도 거주하고 있던 점, 바로 앞집에는 나이 든 어머니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A씨가 불을 질러 이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의도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현관문 근처에 소화기가 있다는 점도 A씨가 충분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불이 꺼졌다고 생각했음에도 불을 붙이려는 추가적인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아파트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면서 “불을 붙이기 위해 일회용 라이터만 사용했을 뿐 다른 인화성 물질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에 앞서 A씨는 수사기관에 “현관문을 열도록 B씨를 겁주기 위함이었다”고 진술했다.
B씨 또한 “A씨가 이전에 집에 불을 지르거나 지른다고 한 적이 없고, 내가 집에 있으니 바로 불을 끌 것이라 생각해 겁주려고 대문에 불을 붙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한편 지난해에는 윗집에서 오물 냄새가 내려온다는 이유로 윗집 현관문 우유투입구에 불을 붙인 청소포를 밀어 넣은 50대 남성 C씨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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