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방문 때 “교류 앞장 서 달라”
KEDA 설립해 양국 기업 윈윈 모색
52회 방문으로 인적 네트워크 형성
수에즈경제특구에 조성된 한국산단
중소기업 입주시 유럽·중동 문 열려
내년 4월 교류 문화예술행사 지원도
“내년 4월13일이 한국·이집트 수교 30주년 기념일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피라미드 앞에서 K팝 공연을 하는 장면을. 가슴 뛰지 않나요?”
인연이란 참 묘하다. 영원할 것 같은 인연이 한 순간 부질없어진다. 기약 없던 헤어짐이 조우의 환희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정성을 다 해줘도 부족하다.
강웅식(67)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 회장과 압델 파타 엘시시(70) 이집트 대통령의 인연이야말로 참 묘하다. 육사 37기 출신인 강 회장은 1991년 소령 시절 영국 합동지휘참모대학(JSCSC)의 전신인 왕립육군참모대학에서 1년간 유학한 적 있다. 엘시시 대통령은 이집트에서 유학 온 엘리트 장교였다.
당시 50여개국에서 온 외국 장교 중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16개국 출신은 정규 교육 시작 전 2개월간 별도로 영어 수업을 들었다. 수업 장소가 유학생 숙소에서 무려 100㎞나 떨어진 비콘스 필드였다. 유일하게 강 회장이 전임자들한테 물려받은 중고차라도 갖고 있었다. 차량은 이집트를 비롯해 오만, 요르단, 모로코 국적의 장교를 묶어 주는 매개였다. 그들과 함께 다니다보니 가족끼리 식사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특히 강 회장과 엘시시 대통령은 아들이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라서 가족간 끈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귀국 후 일상에 묻히다보니 추억을 잊고 지냈다. 인연은 우연찮게 다시 그에게 찾아왔다. 맹호부대 기갑여단장 등을 지내고 대령으로 예편한 2013년 7월 어느 날이다. TV를 보다가 이집트 군사혁명을 전하는 뉴스에서 귀에 익은 ‘엘시시’라는 이름을 들었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엘시시 대통령은 ‘파라오(전제군주)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독단적 통치를 펼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 강 회장은 중국 베이징 주재 이집트대사관의 국방무관을 통해 23년 만에 엘시시 대통령 측과 연락이 닿았다.
이집트에서 ‘민족주의 상징’으로 떠오른 엘시시 대통령은 대권 도전에 나서 2012년 5월 97.5%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는 89.6%의 득표율로 3연임에 성공했다. 국가 부흥을 위해 이집트 국민이 강력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평가다. 엘시시 대통령은 2030년 4월까지 이집트 국정 운영을 책임진다.
강 회장 가족이 2014년 엘시시 대통령 초청을 받아 1주일간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친가족처럼 반갑게 맞았다. 두 가족은 23년전 영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강 회장 아들이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의 얼굴을 그리도록 한 수업 과제로 제출한 엘시시 대통령 아들의 그림을 찾아 가져갔는데, 단연 화제가 됐다.
엘시시 대통령은 “‘미스터 킹’, 세계 최대 빈국이던 한국이 선진국이 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국식 개발 모델을 이집트에서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유학 시절부터 엘시시 대통령은 강 회장을 ‘미스터 킹’이라고 불렀다. 아랍 출신들이 “강” 발음을 어려워해 강 회장은 “킹”, “캥”, “콩”처럼 편하게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오만 출신 장교는 “미스터 콩”이라고 불렀다.
엘시시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서 양국 경제문화 교류에 강 회장이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2015년 8월 사단법인 KEDA가 출범한 배경이다. 이집트에도 이집트한국발전협회가 설립돼 있다. 엘시시 대통령의 경제고문과 총리를 역임한 이브라힘 마흘랍 명예회장을 비롯해 예비역 장군인 압델 모센 상임고문 등이 활동하고 있다.
강 회장이 그 때부터 이집트를 방문한 게 무려 52차례에 이른다. 우리 기업들의 이집트 진출을 돕고 우호협력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만 해도 지난해 10월, 지난 2월, 4월 3차례나 방문했다. 엘시시 대통령과 친분을 바탕으로 이집트 고위관료들과 교류하면서 양국 기업간 윈윈 사업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이집트는 중동아프리카의 물류·생산 허브를 목표로 2015년부터 추진한 수에즈운하 경제특구(SCEZ)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중해에서 홍해로 이어지는 수에즈 운하 주변에 여의도 44.8배인 130㎢ 규모로 들어선 산업단지로, 이집트 경제개발 중심축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2016년 엘시시 대통령이 이집트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주요 의제로 오르기도 했다. 강 회장은 요즘 한국 기업들이 경제특구 내 조성될 한국산업공단에 진출하도록 돕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경쟁국인 중국 기업의 진출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17일 강 회장의 전언이다.
-50여차례 방문을 통해 느낀 이집트는 어떤가.
“날이 갈수록 깨끗해지고 인프라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걸 느낀다. 발전하는 나라임을 느낄 수 있다. 2014년 엘시시 대통령 초청으로 가족이 한 달간 이집트를 방문하기 전이다. 국내 대기업 미래전략실 책임자를 찾아가 이집트에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게 좋을지 자문했다. 그 분이 박정희 대통령과 대한민국 발전 모델을 언급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잘 세우고 수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할 것을 조언하더라. 외국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서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엘시시 대통령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과 정치인들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를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돼 물동량이 커지고 경제가 커지면서 자동차 산업 등이 발전했음을 얘기해 줬다. 지금 이집트의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집트 박사’가 됐을 법하다.
“10년 전 카이로에서 만난 대기업 관계자 얘기로 현지에 지사를 운용하는 데 연간 3억원 가량 든다고 하더라. 당시 운용한 지 2년이 됐다는데도 이집트 정부 하급 공직자를 만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비용이 더 들 것이다. 그동안 이집트에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로 현지 지사 운용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있다. 회사 여건상 외국 지사도, 외국 진출도 엄두내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우리 협회를 활용했으면 한다.”
-우리 국민에게는 사막과 나일강, 피라미드, 스핑크스로 인식되는 게 사실인데.
“사실 낯선 곳이라 가기가 두려울 것이다. 몰라서 두려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집트가 아프리카에 있으니 흑인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직접 가보면 문화의 보고라는 걸 실감하고 놀라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나라다. 엘시시 대통령은 ‘우린 아프리카와 중동의 허브’라고 늘 자랑한다. 수에즈 운하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있다. 미래에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인구가 1억1500만명에 이르고 연간 1000만명씩 늘어난다. 우리나라가 30만명에서 20만명으로 내려앉은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중동 유전 부국의 엔지니어, 의사, 교사의 절반이 이집트인이다. 이집트인들 수준이 높다. 이집트의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에 나간 800만명의 임금 송금이다. 이어 관광과 수에즈 운하 통행료가 큰 수입원이다.”
-수에즈운하 경제특구에 한국 기업을 위한 지역이 들어선다는데.
“수에즈운하 경제특구는 크게 4개로 나뉘는데, 아인 소크나 경제특구가 가장 크다. 한국기업은 그쪽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구 2400만명의 카이로에서 67㎞ 가량 떨어진 신행정수도와 가까운 곳에 아인 소크나 경제특구가 있다. 신행정수도에는 대통령실, 총리실, 국회, 각 행정기관이 모두 몰려 있다. 왕복 10차선 도로 완공으로 신행정수도에서 아인 소크나 특구까지 45분이면 도착한다. 인접 항구까지는 차로 20분, 공항까지는 1시간 걸린다.”
-어떤 기업이 진출에 유리할지.
“완구나 섬유, 의류 등 노동집약적인 회사가 진출하기에 최적이다. 이집트 측에서는 건설자재, 전자 및 자동차 부품, 화학제품, 의료장비 등의 진출도 요청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집트로 수출시 인증절차가 까다로운 화장품이나 의약품, 의료기기, 방산제품 등은 원스톱으로 간소하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SCEZ에 진출하면 이집트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특히 직항재개 등을 강력하게 요청할 예정이다.”
-그곳에 진출하면 얻는 이점은.
“이집트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길목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EU),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남미공동시장 메르크수르, 튀르키예,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범아랍자유무역지대(GAFTA)를 통해 약 105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이집트에서 현지 생산하면 이런 시장으로 수출이 가능하다. 현지 제조 비율에 따라 부품·중간재 관세를 할인해 주고 생산장비에도 관세 혜택을 준다. 이집트 시장 자체도 인구 1억1500만명의 거대 시장이다. 인구의 60%가 30세 이하인 젊은 국가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는 기술이전을 받고 고용을 창출하고 우리는 저렴하면서도 풍부한 인력을 활용해 관세없이 유럽과 중동으로 진출할 수 있어 윈윈이다.”
-이집트에 투자하지 않고 수출만 할 수 없는지.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한다. 스마트폰 10%, 텔레비전 40%, 화장품 45%, 자동차 40∼135%다. 이집트에 진출하면 원료나 원자재는 기본적으로 무관세다.”
-SCEZ 한국공단 투자 여건은 어떤가.
“부지 임대료가 50년 임대계약으로 ㎡당 35달러다. 300평에 대한 50년 임대료가 4500만원 가량이다. 그것도 4년간 분할해서 내면 된다. 전기료는 1㎾h 당 48원인데, 우리 산업용 전력 요금 90∼150원에 비해 낮다. 인건비도 월 130달러 수준이다. 중국이나 베트남만 해도 월 500달러가 훌쩍 넘어간다. 수에즈운하와 15개 상업항구, 27개 공항시설 등 물류 인프라도 풍부하다. 에너지와 원자재 조달 요건도 양호하고 비교적 저렴하다.”
-임대료가 너무 저렴하다. 나중에 변경될 가능성은 없는지.
“아인 스쿠나 특구를 세분하면 8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엘 스웨디 그룹이 분양받아 개발 중인 지역이 있는데, 그곳 임대료가 그 가격이다. 이미 도로와 전기와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다른 지역은 가격이 다른 것으로 안다. 3∼6개월이면 공장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올해 하반기 계약하면 내년에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력은 차로 30분 가량 떨어진 수에즈 시티에서 확보가 가능하다. 인구 100만 도시라서 노동력이 풍부하고 이 도시의 임금은 월 평균 125달러다.”
-인건비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대사관 측 설명에 따르면 국제기관에서 낸 수치상으로 이집트 현지 인건비는 한국의 35분의 1, 중국의 15분의 1, 베트남의 4분의 1수준이라고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크지 않은지.
“그 부분을 많이 걱정을 한다. 집권 초기에는 다소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권이다. 엘시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90% 가까운 지지율로 3선을 하지 않았는가. 2030년까지 집권할테고 대안이 없어 건강만 허락된다면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해외에 진출하려면 금융지원이 필수적일텐테.
“엘 스웨디 그룹의 자회사들과 합작형태의 투자가 가능하도록 연결해 줄 수 있다. 우리 국가가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ODA(공적개발원조) 형태로, EDCF(대외경제협력기금)나 전대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EDCF를 통한 자금은 특정 개발 프로젝트에 할당되는데 주로 경제개발과 사회인프라 구축 지원에 쓰인다. 한국 진출기업을 돕기 위해 지난 3월초 처음으로 카이로에 우리 수출입은행의 지사가 설치된 상태다.”
-엘 스웨디 그룹은 어떤 기업인가.
“이집트의 삼성전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기, 엔지니어링 및 제조 분야의 선두 기업이다. 1938년 설립됐는데 사업 다각화로 전기 케이블 및 전선, 전기제품, 재생에너지, 통신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오너인 아흐메드 알스웨디 회장과 친분이 깊어 우리 중소기업이 진출하면 협력파트너가 될 자회사를 연결해 줄 수 있다.”
-이미 진출한 국내 기업도 있을텐데.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두산중공업 등 628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와 교역 규모는 2022년 기준으로 32억 달러로, 전체 교역국에서 49위 수준이나 아프리카 국가로만 놓고 보면 4위에 해당한다.”
-현지 진출에 도움을 준 기업 사례를 소개해 달라.
“2018년 11월 삼성전자 공장 등 다수 외국업체가 입주해 있는 베니스에프 주에서 국내 업체 대표와 아쉬라프 이웨스 NBNS(주 협동조합) 회장이 오폐수처리 관련 프로젝트 계약을 했다. 2017년 베니스에프 주지사가 한국 기업 참여를 요청해 KEDA 회원들과 함께 관심있는 국내 강소업체를 섭외해 이뤄낸 성과다. 오수를 정화해 하루 350톤 규모의 농업용수를 만드는 설비 1개소, 500톤 규모 2개소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올해에는 철도차량부품 제조업체인 이스턴R&E와 이집트 화차객차 1위 업체인 NERIC 간에 대차 1000개 공동제작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집트 어린이 수술을 도왔다고 들었다.
“2018년 서울대 정필훈 교수님 등 8분의 의사 및 간호사님 도움을 받아 현지 알아즈하 대학 특수병원에서 안면기형 어린이 환자 21명을 대상으로 무료 시술을 진행했다.”
-내년 이집트와 수교 30년을 맞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던데.
“주이집트대사관과 예하 10개 단체에 130만 회원을 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이 적극 힘쓰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참여해 준비하는 행사다. 유인촌 장관이 내년 30주년 행사를 적극지원 해주기로 했다고 들었다. 지난 10년간 KEDA가 쌓은 이집트 활동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과 이집트 정부기관, 예술단체, 기업을 하나로 묶어 성공을 자신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라고 하던가.
“카이로에는 조순 서울시장 시절인 1997년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하면서 1998년 조성한 서울공원이 있다. 그 곳과 피라미드 등지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이라고 한다. 한식과 한복문화를 소개하고 K팝 공연을 펼치는 내용으로 안다.”
-피라미드 앞에서 K팝 공연을 한다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피라미드 근처에서 2만명 가량이 운집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1960년대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시합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집트는 관광이 제2의 수입원인데 K팝 공연을 하면 피라미드 등 문화유산을 더욱 빛내고 우리 문화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KEDA에 관심이 커질 것 같다. 소개를 해달라.
“2015년 8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승인한 사단법인으로, ‘봉사’, ‘교류’, ‘협력’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바탕으로 활동한다. 한국과 이집트 간 민간 경제교류와 협력관계를 통해 문화·경제 분야 등 민간 차원의 우호증진과 공동번영을 도모하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이희범 전 장관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네트워크가 필요한 중소기업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집트 현지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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