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정부’ 들어서면 총리가 국방 주도하며
마크롱 정부 정책들 뒤집을 가능성 내비쳐
하원의원 총선거를 앞둔 프랑스에서 임기가 아직 3년 남아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동네북’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은 이미 정권을 차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대놓고 마크롱을 조롱하는 모양새다. 물론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패배하면 마크롱의 ‘레임덕’은 불가피하겠으나, 그래도 현직 대통령을 대하는 RN의 태도가 지나치게 오만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마린 르펜 전 RN 대표는 프랑스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후에도 마크롱이 프랑스군의 통수권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르펜은 “국방 예산을 쥐고 있는 것은 총리”라며 “헌법상 대통령의 군통수권자 지위는 명예직에 가깝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인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제 구조다. 보통은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여당 소속인 만큼 대통령의 우위 아래 정부가 운영된다. 그런데 하원이 여소야대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통령과 야당 출신 총리가 공존하는 ‘동거정부’(cohabitation)가 출현하는 것이다.
프랑스 헌법 15조는 ‘대통령은 군의 통수권자다. 대통령은 국방최고회의 및 국방최고위원회를 주재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국방 분야가 온전히 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총리는 국방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헌법 21조 1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르펜의 말은 대통령의 군통수권자 지위는 형식상 그렇다는 것일 뿐 국방 예산 편성 등 실질적 권한은 총리한테 있다는 뜻이다. 총선에서 야당인 RN이 승리해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가 총리에 오르면 국방 분야에서도 마크롱은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르펜은 마크롱 행정부의 현 국방정책을 뒤집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폭주를 막기 위해 파병 등 모든 옵션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마크롱의 발언과 배치된다. RN은 앞서 “우리가 집권하면 러시아 본토 공격용으로 쓰일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르펜과 RN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벌써 정권을 장악하기라도 한 듯 오만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현 국방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의 군통수권자 지위는 명예직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르펜을 반박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전 법무부 장관도 “르펜의 발언은 프랑스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장 노엘 바로 외교부 유럽 담당 부장관은 “RN이 이미 선거에서 이긴 듯 행동하는 르펜이 참으로 오만하다”며 “헌법을 다시 쓰려 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오만한가”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총선은 오는 30일(1차 투표)과 7월7일(결선투표) 실시된다. 현재 RN이 1위, 사회당 등 좌파 정당 연합체인 신인민전선(NFP)이 2위를 달리는 가운데 마크롱의 여당 르네상스는 3위로 뒤처져 있다. RN은 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스스로 총리를 배출하고 장관들을 임명해 마크롱과 동거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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