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법상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건 표면적으론 일 할 사람은 줄고 부양 대상은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노인의 기준을 재정립하거나 정년 연장 등을 통해 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시기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초고령사회’로 내달리는 한국
1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1000만62명으로, 전체 주민등록인구 5126만9012명의 19.51%를 차지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것인데,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월등히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노인 인구가 전체의 7%를 차지하는 ‘고령화사회’ 진입 시기는 우리나라가 2000년으로 미국(1942년), 일본(1970년), 독일(1932년)에 비해 매우 늦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 진입도 우리나라는 2017년으로 미국(2015년), 일본(1994년), 독일(1972년)에 비해 늦은 편이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의 경우 우리나라는 올해 연말이나 2025년초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은 2036년, 일본(2006년)과 독일(2009년)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노인 인구 7% 이상)에서 고령사회(노인 인구 14% 이상)가 되기까지 17년이 걸렸지만,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 이상)는 불과 7년만에 도달할 전망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과 독일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각각 12년과 37년이다. 우리나라는 폭주기관차처럼 초고령사회로 내달리고 있는 셈이다.
◆“노인 증가로 사회·경제적 비용 급증”
정부가 3월에 발표한 ‘어르신 1000만시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대책’ 자료에 따르면 노인 인구 증가로 진료비가 급증하는 등 사회·경제적 비용도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올해를 기준으로 보면 85세 이상 인구가 102만명, 독거노인 199만명, 치매노인 100만명 등 돌봄 부담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연령·세대나 건강상태 등에 따라 서비스 욕구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0년 83.5세였던 기대수명이 2050년 88.6세를 거쳐 2070년엔 90.9세로 증가하면서 후기고령 노인이 급증해 치료와 요양, 치매관리, 노쇠예방 및 일상생활 지원 등 복합적 서비스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전 세대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베이비붐(1959∼1964년생) 세대가 노년기에 진입하면서 서비스 질에 대한 요구도 상대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2008년 700만원에 불과했던 1인당 연간소득은 2020년 1558만원으로 2.2배로 증가했다. 여가·취미 활동에 대한 비용지불 의사와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수준이 월등히 높아진 배경이다.
◆일상으로 들어온 초고령사회의 단면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의 여러 단적인 상황들을 경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보상이 승인된 재해 사망자 2016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1051명(52.1%)으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일터에서 사고나 업무상 질병으로 숨진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늘어났기 때문인데,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60세 이상 비율은 2013년 12.9%에서 지난해 21.9%로 증가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고령 취업자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고령 취업자들의 산업재해 및 사망 만인율을 감소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말 기준 국내 등록 장애인 264만7000명 가운데 65세 이상은 54.3%로, 지난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겼다.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환갑을 넘었다.
지난해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7만4000명 증가한 207만300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는데, 전체 자영업자(568만9000명) 중 60세 이상 비중은 36.4%로 역대 가장 높았다.
고령화 문제는 최근 의대 증원에 따른 의·정 갈등의 배경으로도 제시됐다. 정부는 고령화로 의료수요가 급증해 의대 증원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면서 오히려 의사 과잉이 될 것이라고 맞섰다.
◆“더 일할 기회, 고령화 대응 원칙 세워야”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현재 60세인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정년 연장은 올해 주요기업들의 임금 및 단체협상의 쟁점 중 하나인데, 현대자동차 노사는 정년 연장 개선 방안을 내년 상반기 계속 논의하기로 하면서, 우선 기술직(생산직) 촉탁계약 기한을 현재 1년에서 1년을 더 추가하기로 했다. 촉탁계약직은 정년퇴직한 조합원을 신입사원과 비슷한 임금을 지급하고 재고용하는 것인데, 노사는 이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면서 사실상 재고용 형태로 정년을 만 62세까지 늘린 셈이다.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만 63∼65세까지의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이 내실 있게 재설계돼야 한다고 목소리도 있다.
정년이 지난 직원을 계속고용하는 중소·중견기업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분기별 90만원을 지원하는 계속고용장려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올해부터 지원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었지만 수혜 인원은 오히려 20% 줄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현장에서 계속 고용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대기업은 자동화를 택하고,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다 보니 60세 이상 근로자들이 계속 일하긴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단기 대책 보다 “고령 노동자 활용 중심으로 정책이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고령화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아닌 새로운 체제 전환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세대 및 지역 간 양극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청년 인구가 줄면 수도권 쏠림이 더 심해져 지역 격차가 커질 것”이라며 “산업 분야도 혁신성이 떨어지는 외식업, 숙박업, 돌봄업종 등 일자리 질이 나빠져 소득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노인 복지가 필요 이상 강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어떤 원칙으로 고령화에 대응할지 원칙을 먼저 세우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