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일변도 대법원에 경고 메시지 보내
“헌법 개정 사항… 실현 가능성은 낮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사법개혁’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고령의 바이든에게서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넘겨 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적극 지지하고 나선 반면 공화당은 “사법부를 급진적 판사들에게 내주려는 시도”라고 맹비난했다.
미 언론들은 제시된 개혁안이 헌법 개정을 요하는 사항인 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절대 우위 구도로 개편된 연방대법원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29일(현지시간) A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은 이날 민주당 지지 색채가 뚜렷한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핵심은 현재 종신제인 대법관직에 임기 제한을 두고 대법관들을 규제하는 행동강령을 신설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연방법원 판사는 위로는 대법관부터 아래로는 1·2심 법관까지 모두 정해진 임기 없는 종신직이다. 일단 임명되면 △사망 △자진사퇴 △의회 탄핵에 의한 파면 3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죽을 때까지 재임이 가능하다. 일례로 윌리엄 더글러스 전 대법관은 1939년 취임해 1975년 건강상 이유로 불러날 때까지 무려 36년 7개월 동안 대법원에서 일하며 역대 최장수 대법관 기록을 세웠다. 윌리엄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의 경우 1972년 대법관에 발탁돼 1986년 대법원장으로 승진한 뒤로도 19년 동안 더 일하고 현직이던 2005년 타계했다.
이번에 바이든이 제안한 것은 대법관에 한해 종신제를 폐지하고 18년 임기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그래도 한국 대법관 임기(6년)보다 3배나 길다. 다만 이는 ‘연방법원 판사는 중대한 죄가 없는 한 그 직을 보유한다’라고 규정한 미국 헌법 제3조 제1항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미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미국인 다수가 대법관 종신제 폐지 및 임기제 도입에 긍정적’이란 취지로 보도했다.
바이든이 임기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현재 대법원의 인적 구성 때문이다. 전임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대법관 3명을 새로 임명했는데 하나같이 강경 보수 법조인들이었다. 그 결과 대법원은 보수 6 대 진보 3의 구도가 돼 모든 사건에서 진보 진영이 패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2022년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는 헌법상 권리가 아니다”라며 기존 판례를 깨고 낙태권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진보 진영과 젊은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바이든은 또 대법관들을 규제할 행동강령의 신설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근 몇몇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지인에게서 거액의 선물을 받거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등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점을 겨냥한 것이다. 대법원에 자체 행동강령이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보수 대법관의 일탈을 막는 데 역부족이라는 것이 바이든의 주장이다.
다만 이 개혁안들이 정식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당장 야당인 공화당에선 “사법부를 극좌파, 급진파 판사들로 채우려는 계략”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이 하원에 도착하는 즉시 사망 판정을 받을 것”이라며 “바이든은 지금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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