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를 추모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기원하는 일본 나가사키시의 기념식이 이스라엘의 초청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9일 개최됐다.
NHK방송 등에 따르면 나가사키시는 이날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79주년 ‘원폭 희생자 위령 평화 기념식’을 개최했다. 스즈키 시로 나가사키 시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면전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는 중동 정세 등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인도적 규범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즈키 시장은 “핵위협이 한층 더 강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핵폐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행사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추진하는 것이 전쟁 피폭국인 우리나라(일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또 “비핵 3원칙(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음)을 견지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해 국제사회 대응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나가사키 위령제는 서방 주요국의 대사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행사에 초청하지 않은 것에 반발한 조치였다. 스즈키 시장은 “정치적인 이유로 초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평온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행사를 원활하게 실시하고 싶은 것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은 대사를 보내지 않고 공사, 영사 등을 참석시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들 국가는 지난달 나가사키시에 보낸 서한에서 “이스라엘을 초대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러시아, 벨라루스와 같은 부류 나라로 취급돼 오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한편 기념식 후 기시다 총리는 8일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 지진이 발생한 뒤 태평양 연안에서 더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일본 기상청 발표에 따라 중앙아시아 순방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부터 12일까지 4일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몽골을 잇달아 방문해 중앙아시아 5개국 등과 정상회의를 할 예정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위기관리 최고 책임자로서 적어도 1주일 정도는 국내에 머물러 정부 대응이나 정보 전달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순방 취소 이유를 설명했다. 예정했던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정상회의 등은 온라인으로 개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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