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최선 다했다” 피날레 연설
50년 정치인생 ‘선당후사’ 빛나
해리스 “우린 이길 것” 깜짝 등장
힐러리, 女 대통령 도전 선배로 힘 실어
트럼프·김정은 관계 겨냥해 ‘직격탄’
“해리스, 독재자에 러브레터 안 쓸 것”
전미車노조 “그녀는 노동자 위한 투사”
펜실베이니아주 대의원 좌석도 눈길
가장 상단 배치… 경합주 승기잡기 포석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시작된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프라임 타임’(가장 많은 시청자가 생방송으로 전당대회를 보는 시간)으로 꼽히는 밤 10시30분쯤 막내딸 애슐리 바이든의 소개를 받아 바이든 대통령이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올라 애슐리와 포옹했다. 격정을 누르지 못한 듯 바이든 대통령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50년 정치 인생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라스트 댄스’ 무대가 된 이날 연설에서 4년 전 추운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시위대의 의회 습격 사태로 경비대들이 둘러쌌던 워싱턴의 캐피톨 힐(의사당)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5000여명의 대의원을 포함해 2만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유나이티드센터를 꽉 채운 사람들은 ‘위 러브 조’(우리는 조를 사랑한다)라고 쓰인 팻말 등을 들고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모습을 보인 바이든 대통령을 위해 기립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일어나 힘껏 박수를 쳤다. 바이든 대통령 사퇴를 주장했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기립해 있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주름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이날은 지난달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지 29일째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대통령 후보 선출에 필요한 대의원을 일찌감치 확보하며 재선 도전에 나섰던 바이든 대통령은 고령?인지력 논란 등에 시달렸다. 지난 6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TV 토론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당내 사퇴 압박은 최고조에 달했고 결국 그는 해리스 부통령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넘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기가 사퇴를 주장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보존해야 하고, 투표해야 하며, 상원의 다수석을 지켜내고, 하원 다수를 되찾아야 한다”며 “트럼프에게 승리해야 한다”고 외쳤다. 당내 압박에 못 이겨 사퇴한 것이 아니라 당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사퇴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해리스 부통령)는 미국의 미래에 족적을 남길 역사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최고의 자원봉사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무대로 나가 그를 여러 번 껴안았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유나이티드센터 무대에 깜짝 등장해 “싸울 때 우리는 이긴다”(When we fight, we win)고 외쳤다. 그는 약 2분간의 짧은 연설에서 “11월 대선에서 우리는 한목소리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선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2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은 바이든 대통령을 예우하는 데 특별히 신경 썼다. 해리스 부통령은 “우리의 엄청난 바이든 대통령을 기리면서 행사를 시작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당신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연설에 앞서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애슐리가 연설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완주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질 여사는 이날 “몇 주 전 바이든 대통령이 그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더 이상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기로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선거 유세를 하던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일자리 증가, 팬데믹 극복, 반도체 공장 국내 유치, 동맹 협력 등 자신의 치적을 설명하는 데 연설의 상당 시간을 할애한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언급할 때는 표정이 굳고 서슴없이 공격했다. “그는 미쳤다”, “그는 대선 패배 시 이미 ‘피바다’를 장담했다”, “독재자와 친하다” 등 기회마다 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공격을 퍼부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50여분간의 긴 연설을 마친 뒤 “미국,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며 “나의 나라에 내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쳤다. 나는 29세 첫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을 때보다 더 미국의 미래에 희망적”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도 약 4분간 박수를 쳤던 참석자들은 그가 연설을 마친 뒤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날 6시간가량 진행된 전당대회에선 2016년 미국의 첫 여성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등장해 다시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그는 “우리는 함께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하며, 가장 마지막인 (유리) 천장에 균열을 가할 것”이라며 “나와 카멀라의 어머니가 우리를 보신다면 ‘계속 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특히 “그녀는 결코 독재자에게 ‘러브 레터’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재임 시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꼬았다.
민주당 내 가장 진보로 분류되며 청년층에 큰 영향력을 가진 스타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뉴욕)이 무대에 오르자 역시 큰 환호가 쏟아졌다.
해리스 부통령 자신은 클린턴 전 장관의 대선 패배를 교훈 삼아 스스로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자제하고 있지만, 민주당 여성계엔 유색인종 여성 대통령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날 전당대회에 앞서 열린 민주당 소상공인위원회 모임에 참석한 일본계 메이지 히로노 하와이 상원의원은 청중석에서 ‘유색인종 여성 대통령 탄생’ 문구가 전광판에 나오자 손을 번쩍 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당대회장엔 펜실베이니아 대의원들의 자리가 해리스 부통령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와 함께 연단 앞 가장 상단에 배치돼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출신 지역인 델라웨어, 팀 월즈 부통령 후보의 출신 지역 미네소타는 그 뒤에 위치했다. 승리를 위해 꼭 이겨야 하는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 승리에 민주당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도 연설자로 나서 “해리스는 우리 편이다. 그녀는 노동자 계급을 위한 투사”라고 강조했다.
전당대회에 앞서 대회장인 유나이티드센터와 도보로 약 15분 떨어진 유니언 파크에서는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이 반전 시위를 벌였으나 예정보다 작은 규모에 그쳤다. 대신 지난 3월 미시간?미네소타 등의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해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에 투표한 유권자들을 대표하는 약 30명의 대의원이 전당대회에 참가해 가자전쟁 즉각 휴전을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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