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중주시키며 “이것은 독창회가 아니다. 나를 존중해달라” 하기도
커튼콜 때도 뒤늦게 나오던 중 일부 관중 야유에 횡 돌아서 퇴장
관객들, “동료 성악가와 한국 관객 무시한 태도” 비판 목소리 높아
국내 오페라 공연 사상 초유 사태…세종문화회관 측 “게오르규 측에 항의 및 사과 촉구 등 강력 대응할 것”
8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마지막 공연이 끝난 순간,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였어야 할 극장 안팎은 소란스러웠다. 주인공 토스카를 연기한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59)가 공연 도중 무례한 돌발 행동으로 공연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관객들 사이에선 “동료 성악가와 한국 관객을 무시한 태도”라는 비판 목소리가 상당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일부 관객은 세종문화회관 측에 환불을 요구하거나 게오르규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국내 오페라 공연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건 ‘토스카’ 후반부인 3막에서 토스카 연인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51)이 대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부른 후다. 최정상급 테너로 오랜 만에 전막 오페라 무대에 선 김재형의 열창에 객석에서 엄청난 환호와 갈채가 오랫동안 쏟아졌다. 김재형도 감격에 겨웠는지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앙코르 요청까지 나오자 지중배 지휘자의 배려로 다시 한번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다. 관객들도 곧장 귀를 기울이며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게오르규가 불쾌한 기색으로 무대 한쪽에 난입해 ‘그만 하라’는 식의 손짓을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순간 ‘뭐지’하며 게오르규 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김재형 노래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게오르규는 김재형이 노래를 마치고 다음 연주가 시작되자 중단시킨 후 지휘자와 객석을 향해 한마디했다. “이것은 독창회가 아니라 오페라다(It is not recital, It is opera). 나를 존중해 달라(Respect me)!”고. 그 순간 극장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기분이 상한 일부 관객은 게오르규에게 “그만 들어가라”로 소리쳤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경험이 많은 가수들답게 게오르규와 김재형은 다음 장면을 이어갔고, 비극적 결말로 막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게오르규 탓에 흐름이 끊겨 관객의 공연 몰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 모든 출연진이 관객들에게 인사하러 나오는 커튼콜 때 다시 불미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출연자 중 맨 마지막에 나와 인사해야 할 게오르규가 바로 무대에 나오지 않았다. 김재형과 사무엘 윤(스카르피아 역) 등 주역을 비롯한 다른 출연진과 관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박수를 치며 기다렸다. 게오르규는 뜸을 들이다 나오던 중 몇몇 관객이 ‘우∼’하고 야유를 보내자 얼굴이 일그러지며 횡 돌아서 퇴장해 버렸다. 무대 위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차례로 등장한 지중배 지휘자와 표현진 연출,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다. ‘토스카’의 주역 토스카가 빠진 채 커튼콜을 하는 생경한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관객들은 최선을 다한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만 게오르규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괘씸하다’는 기류였다.
정경(바리톤), 김효종(테너) 등 이날 공연을 관람한 성악가들도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며 게오르규의 성급한 처신을 비판했다. 오페라 공연 중 앙코르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크게 감동한 아리아의 경우 앙코르 요청에 화답하곤 하기 때문이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관객 분위기에 따라 즉흥 앙코르를 하기도 한다. 앙코르가 적절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긴 해도 종종 있어 왔던 일”이라며 “게오르규는 다음 사람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앙코르를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일부 관객은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다면 관객이 요청해도 앙코르를 자제해야 한다”며 게오르규의 반응에 공감하기도 했다. 게오르규의 오랜 팬으로 이날 무대를 지켜본 A(51)씨는 “게오르규가 선을 넘긴 했다”면서도 “커튼콜 때 몇몇 관객이 야유를 보낸 것 역시 지나쳤다”고 꼬집었다.
이번 ‘토스카’ 공연 제작진 관계자는 “게오르규가 예전에도 해외 공연 때 그런 적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세계적 ‘디바(뛰어난 여가수)’라도 이런 무례한 행동은 용납하기 힘들다. 불만이 있었다면 공연 후 제작진에게 따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오르규는 2016년 4월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극장 ‘토스카’ 공연 때도 돌출 행동으로 눈총을 산 바 있다. 카바라도시를 연기한 세계적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별은 빛나건만’으로 앙코르를 하자 다음 장면에서 1분이 지나도록 등장하지 않은 것. 머쓱해진 카우프만이 “우리에게 소프라노가 없네요”라며 관객에게 에둘러 양해를 구하고 거듭 사과해야 했다.
당시 ‘토스카’의 주인공은 소프라노인 자신이라고 여긴 게오르규가 테너에 대한 찬사와 앙코르를 못마땅해했다는 후문이 돌았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한 관계자는 “정말 공들여 준비한 ‘토스카’ 기획 공연인데 잘 마무리하고 뿌듯해야 할 마지막 날에 게오르규가 단단히 망쳐버린 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입장문을 내고 “앙코르가 진행 중인 무대 위에 출연자가 등장하여 항의 표현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오페라단은 게오르규 측에 강력한 항의 표시와 함께 한국 관객에 대한 사과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게오르규 측은 9일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토스카’는 지난 5∼8일 A팀(게오르규·김재형·사무엘 윤)과 B팀(임세경·김영우·양준모) 주역이 2차례씩 4차례 관객과 만났다. 게오르규는 음악적 기량이 예전만 못했지만 토스카 역에 정통한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임세경은 엄청난 고음과 성량으로 짜릿한 토스카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두 팀 각자 차별화한 매력으로 색다른 맛의 ‘토스카’를 선보였다. 게오르규가 마지막 공연에서 남긴 오점이 두고두고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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