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라던 상황이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100%의 확률을 잡았다.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8회까지 던진 손주영을 9회까지 끌고 갔다면, 1%의 확률을 꺼내들 상황 자체가 없었을 것 같기에. 물론 이 모든 게 결과론이지만. 2024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5전3승제) 3차전에서 KT를 상대로 6-5 신승을 거둔 LG 염경엽 감독이 찰나의 선택 두 번으로 팀을 울렸다가 웃겼다.
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LG와 KT의 준PO 3차전. 1차전은 KT의 3-2 승, 2차전은 LG의 7-2로 시리즈 전적은 1승1패로 팽팽히 맞선 상황. 역대 5전3승제로 치러진 준PO에서 2차전까지 1승1패 상황이 나온 것은 여섯 차례. 3차전을 이긴 팀이 모두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성공했다. 이날 경기를 잡는 팀이 100%의 확률을 잡는 셈이기에 두 팀 모두 승리가 절실했다.
경기 전 염 감독은 이날 투수진 운영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이날 LG의 선발은 최원태. 지난해 KT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0.1이닝 4실점으로 조기강판당하는 등 포스트시즌 통산 15경기 평균자책점 11.17으로 가을만 되면 고개를 숙였던 투수였다. 염 감독은 “(최)원태가 잘 던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이제 잘 던질 때가 됐다. 원태도 긁히기만 하면 6~7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다. 원태가 긁히는 날이 하루는 오지 않을까”라며 간절한 바람을 드러내면서도 “원태가 좋지 않으면 (손)주영이를 바로 붙여간다. 선발 자원이지만, 불펜 투수로 2~3이닝을 던지면 훨씬 더 강력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말했다. 이어 “1,2차전에서 3.2이닝을 소화한 엘리저 에르난데스(베네수엘라)는 감독 입장에서 정말 쓰고 싶지만, 오늘 어설프게 썼다가 경기에 져버리면 4,5차전이 어려워지기에 99%는 참을 것이다. 1%는 혹시라도 연장 승부에 돌입해 한 타이밍만 막으면 이기는 상황이 올때를 대비해 남겨놓은 것이다. 웬만하면 안 쓴다고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염 감독의 최원태를 향한 간절한 바람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원태는 2.2이닝 동안 피안타 5개, 볼넷 1개를 내주며 3실점(2자책)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의 참사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가을만 되면 약해진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든 투구였다.
계획대로 염 감독은 손주영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2순위로 지명할 만큼 유망주로 손꼽히던 선수였지만, 지난해까지는 10경기 이상을 등판한 적도 없을 정도로 ‘미완의 대기’에 머물던 투수였다. 191cm 장신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으로 내리꽂는 직구를 앞세워 올 시즌 선발 자원으로 자리잡았고, 28경기에서 9승10패 평균자책점 3.79를 기록하며 드디어 잠재력을 만개시킨 투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마운드에는 오른 적 없었던 손주영에게 이날은 포스트시즌 데뷔전이었다. 떨릴 법도 했지만, 손주영은 전혀 그런 기색없이 씩씩하게 투구를 이어나갔다. 3회 2사 1,2루에 올라와 첫 타자인 김상수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았으나 1루 주자 황재균이 오버런으로 런다운에 걸려 아웃당하며 이닝이 끝난 것도 행운으로 작용했다.
4회부터는 손주영의 진가가 드러났다. 최고 149km를 찍은 직구(38구)와 슬라이더(11구), 커브(9구), 포크볼(6개)을 섞어던지며 KT 타선을 말그대로 꽁꽁 묶었다. 당초 2~3이닝을 계획했던 염 감독은 손주영의 타점 높은 직구에 KT 타자들의 방망이가 연신 헛돌자 8회까지 맡겼다. 5.1이닝 동안 피안타는 단 2개, 탈삼진 7개를 잡아내는 완벽투를 선보였다. 손주영이 마운드에서 버텨주는 사이 LG는 5회 오스틴이 벤자민을 무너뜨리는 역전 3점포와 6회 홍창기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내며 6-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5.1이닝 동안 손주영은 64구를 던졌다. 어차피 4차전 등판은 당연히 불가능한 상황이고, 만일 5차전까지 간다하더라도 활용이 어려운 손주영이기에 9회까지 맡기지 않을까 했다. 그만큼 이날 손주영의 공은 그 누구도 치기 힘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염 감독의 선택은 마무리 유영찬이었다. 세이브 상황이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영찬은 첫 타자 황재균에게 안타를 맞더니 보크를 범해 무사 2루에 몰렸다. 김상수를 유격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페이스를 찾는 듯 했으나 배정대에게 중앙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얻어맞고 말았다. 순식간에 6-5, 1점차로 좁혀지며 승부는 안갯 속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여기에서 염 감독은 유영찬을 내리는 선택을 했다. 대신 마운드에 오른 것은 등판 확률이 1%라던 엘리저 에르난데스였다. 1,2차전 도합 3.2이닝을 던졌던 에르난데스는 하루 휴식 후 또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단 공 4개로 천성호와 김민혁을 범타로 처리하며 LG의 6-5 승리를 지켜냈다.
경기 뒤 염 감독은 “(손)주영이가 승리에 있어 최고의 활약을 했다. 롱맨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해줬다. 9회까지도 생각했지만, 7회까지만 해도 직구의 RPM(분당 회전수)가 2500~2600을 오가던 게 8회 들어 2400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교체했다”라면서 “(유)영찬이가 경기를 끝내줬으면 좋았을테지만, 엘리저를 또 써서 아쉽다. 어쨌든 영찬이는 앞으로도 써야할 투수다. 경기를 이겼기 때문에 그나마 영찬이가 부담감을 덜 것 같다”고 투수 교체의 이유를 설명했다.
단 1%의 등판 확률이라던 에르난데스가 유영찬이 투런포를 얻어맞자마자 등판한 것, 이는 분명 그전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묻자 염 감독은 “9회에 영찬이를 올리면서도 뭔가 느낌이 그래서 에르난데스도 준비를 시켰다. 예상대로 그런 상황이 됐다. 에르난데스도 캐치볼을 해보니 팔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해서 이기는 상황에서 기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전에 연장에 가면 에르난데스를 쓴다고 했는데, 어쨌든 연장에 갈 뻔 했던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오스틴과 수훈선수 인터뷰에 들어온 손주영에게 7회까지와 8회 투구할 때의 느낌이 달랐는지를 물었다. 염 감독은 7회까지의 RPM과 8회의 RPM이 달라진 것을 보고 교체했다고 말했기 때문. 경기 전 “(최)원태 형과 저로 오늘 경기를 끝내겠다”라고 말했던 손주영은 “벤치에서 8회를 마치고 바꾸자고 하더라. 8회 들어 구위가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다. 오히려 감각적으로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수 본인의 느낌과 옆에서 지켜보는 사령탑의 느낌이 상반될 때, 어느 것을 택해야하는지 정답은 없다. 객관적인 시선과 데이터, 수많은 경험으로 무장한 사령탑의 선택이 옳을 때도 있다. 아니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이날은 ‘손주영에게 9회를 맡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랬다면 최근 부친상을 당해 심적으로 힘든 상황인 데다 2차전에서도 무실점으로 막긴 했지만, 투구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마무리 유영찬이 투런포를 얻어맞아 심적 데미지를 입을 일도, 에르난데스에게 준PO 모든 경기에 등판하게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수 있었다. 4차전에서 LG가 시리즈를 끝낸다면 3차전의 무리한 불펜 운영을 통한 승리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지만, 5차전까지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분명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기긴 했지만, 이래저래 뒷맛은 썩 개운치 않았던 LG의 준PO 3차전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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