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임관한 공군 장교가 직속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1년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 이후 국방부가 대대적인 성폭력 예방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군 내 성폭력은 근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는 지난달 31일 공군 제17전투비행단에서 여군 소위 A씨에 대한 직속상관 전대장(대령) B씨의 강간 미수·강제 추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상담소에 따르면 A씨는 올해 8월 B씨 등과 회식을 가진 후 강제 신체접촉 등 추행을 당했다. 이후 A씨는 회식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지난달 24일 회식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B씨는 회식 후 관사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A씨의 손을 만지며 “공군에 계속 있게 되면 3번은 나를 보게 될 것”이라며 압박했다고 한다.
관사에 도착한 후 B씨는 숙소로 돌아가겠다는 피해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당시 A씨가 “저는 전대장님 딸과 3살 차이밖에 안 나는 또래입니다. 아내분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거부했으나 B씨의 성폭행 시도는 계속됐다. A씨는 신발도 신지 못한채 도망쳤고, 이튿날 다른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공군이 B씨의 2차 가해를 방관한 정황도 확인됐다. 상담소에 따르면 B씨는 당시 회식에 참석한 간부들에게 A씨가 술에 취해 자신을 유혹한 것처럼 유도신문하며 대답을 녹취했고, A씨는 B씨의 압박을 받던 간부들을 통해 이러한 2차 가해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숙경 군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는 상관이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수차례 성추행하고 강간미수까지 저질렀는데, 사죄하기는커녕 피해자가 원해서 2차를 가게 된 것마냥 호도하며 피해자를 소위 ‘꽃뱀’ 취급하고 있다”며 “2차 피해로 인해 피해자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태로 일상생활이 힘든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와 상담소는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공군이 무책임하게 대처한 탓에 이러한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봤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건 발생 이후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을 명명백백히 밝혀 관련자들에게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해당 부대 지휘관인 17비행단장과 공군본부 감찰부가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추가적인 2차 피해, 진술 오염 등이 발생 중인 이 상황을 즉시 막기 위해서라도 경찰이 즉각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가해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상담소는 전날 오후 국가수사본부에 군인 등 강제추행, 군인 등 강간치상 혐의로 B씨를 고발했다.
공군은 성폭력 피해 신고를 접수한 당일 가해자로 지목된 전대장을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피해자와 분리했다고 밝혔다. 공군 17전투비행단은 “민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먀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엄중 처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2021년 공군에서는 이예람 중사가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군의 조직적 은폐와 2차 가해, 부실 수사로 고통받다 숨졌다. 이 중사의 죽음은 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특검으로 이어졌고, 군 성폭력 범죄 등 3대 범죄를 민간경찰에 이첩하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중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선 2022년 4월에도 20대 여성 하사가 40대 남성 준위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바 있다.
여군의 성폭력 범죄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군사경찰에 접수된 여군의 성폭력 피해 신고는 총 2645건이다. 2020년에는 135건의 신고가 있었으나 2021년 366건, 2022년 673건, 2023년 867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9월까지 60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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