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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공작·기술 유출’도 간첩죄 처벌… 국익 침해 막는다 [심층기획-안보위협죄 입법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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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13 05:50:00 수정 : 2024-11-13 1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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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간첩법 개정안 잇단 발의
가짜뉴스 유포·국가 내정 간섭 등
‘신분위조’ 흑색요원 인지전 기승
간첩행위 ‘적국→외국’ 확대 핵심

법무부·법원 행정처는 ‘…’
“정보 왜곡 등 영향력 공작 추상적”
안보 전문가 “獨·佛도 간첩죄 명시”
국회선 특검에 밀려 논의조차 못해

세계일보가 2022년 8·15 광복절부터 2년여에 걸쳐 ‘간첩 못 잡는 현행 간첩법을 고치자’며 연속 보도해 온 형법 98조(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22대 국회 들어 중요 입법 과제로 떠올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 여당(국민의힘)이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야당이 맞불 법안 발의에 나서면서다.

 

12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가 발의한 간첩법 개정안은 18건에 달한다. 추가 발의를 준비 중인 의원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법 개정의 적기”라며 “이번 기회에 기존 간첩법의 완성도를 높여 한국도 해외 주요국들과 같은 수준의 ‘안보위협죄’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韓, ‘인지전’에 무방비

 

현행 간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이다. 대법원 판례상 적국은 북한뿐이다. 즉 현행법대로면 북한을 뺀 어느 나라에 국가기밀을 넘겨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이런 결함을 안고 있는 법이 1953년 제정된 형법에 들어간 뒤 단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당초 일본의 전시 형법을 모방해 만든 것이어서 평시엔 사실상 무용지물인 법을 국회가 지금껏 방치해 왔다.

 

역대 국회에서 법 개정 움직임이 잠시 일기도 했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기존의 개정 논의는 법문상 ‘적국’을 ‘외국’으로 고치거나 ‘적국’은 그대로 둔 채 처벌 대상을 ‘외국’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2022년 서울 송파구에서 ‘중국 비밀경찰서’가 음식점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올해 들어 미국 수미 테리 사건과 군 정보요원 신상 유출 사태 등이 잇달아 터지면서 기존 간첩법을 대폭 손질할 필요성이 커졌다. 사정 당국의 한 인사는 “비밀경찰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법이 허술해 손쓸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간첩 행위가 날로 고도화하는 점도 법 개정 필요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최근엔 온라인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일상에서 학원, 소모임 등을 가장해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등 수법으로 국가의 중요 정책이나 외교, 선거 등에 개입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이 새로운 간첩 유형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업무 종사자들에 따르면 인지전은 각국 정보기관이 ‘신사협정’에 따라 서로 알고 보내는 ‘백색요원’과 달리 위조 신분(유학생, 사업가, 강사 등)으로 상대국에 잠입하는 ‘흑색요원’들에 의해 주로 수행되고 있다. 백색요원은 일종의 공식성을 갖고 있어서 ‘도를 넘는 활동’을 할 경우 추방 조치도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 흑색요원은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마땅치 않다. 추방은커녕 존재를 파악해도 적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간첩법상 ‘적국’을 ‘외국’으로 고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단 지적이다.

◆법원·법무부는 ‘뒷짐’

 

현재 국회에 계류된 간첩법 개정안 중 일부는 인지전 대응책을 포함한 안보위협죄로 격상된 형태로 발의됐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실 출신인 강승규 의원과 구자근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선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과 강유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법안은 처벌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로 넓혔다. 간첩 행위의 범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해외 흑색요원의 인지전 수행 적발 시 가중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기존의 간첩법을 포괄하는 안보위협죄로서 여태껏 발의돼 온 개정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법안들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상현·조지연 의원과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기업의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해 국익을 해친 행위도 간첩법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재계에서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에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새로운 안보위협죄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다. 법무부는 “‘정보(사실) 왜곡·조작행위, 국내외 정책,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 등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보고했다. 법원 측도 같은 취지로 의견을 냈다. 법사위 전문위원실 관계자는 “영향력 공작이 추상적”이라며 “간첩죄로 규율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인지전 행위를 처벌하는 해외 입법 사례를 조사했는지를 묻자 “참고가 될 자료가 있다면 공유해 달라”고 했다.

 

이와 관련, 안보 분야의 한 전문가는 통화에서 “대륙법계의 본고장인 독일과 프랑스는 인지전 처벌 규정을 법에 명시하고 있는데 정작 대륙법계를 따르는 한국은 인지전 처벌 규정을 법률로 담아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누가 수긍할 수 있을지 대단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지전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우리나라를 겨냥해 안보위협 행위를 이어오고 있는 외국 정보기관들은 앞으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준 전 국정원 방첩국장도 “외국 흑색요원들에 의한 인지전이 일반화되고 있고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이번 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인지전 행위를 간첩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원칙적 규정을 마련해야만 외국 기관원 등에 의한 국익 침해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5일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간첩법 개정안을 포함하는 안보위협죄 관련 심의가 예정돼 있었지만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여야 간 격론이 벌어지는 바람에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간첩법 개정 심의를 먼저 하고 김건희 특검법 심의 순서를 뒤로 미뤘어도 어차피 특검법은 야당 뜻대로 처리됐을 것”이라며 “국가안보가 걸린 사안이 정쟁에 밀리고 밀리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했다. 법사위는 이번 주중 1소위를 다시 열어 간첩법 개정 논의를 시도할 것으로 전해졌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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