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선배님, 수능 대박 나세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인 14일 서울 강남구 개포고 앞은 이른 아침부터 응원 나온 학교 후배들과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오전 5시50분부터 모였다고 한 중동고 학생 20여명은 선배들이 들어갈 때마다 경례하고 “화이팅”을 외치며 기운을 북돋웠다. 중동고 수험생들은 “후배들아, 고맙다”고 화답한 뒤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날 응원단을 이끈 중동고 2학년 기태원(17)군은 “내년에 저도 수능을 봐야 돼서 마냥 기쁘진 않다”면서도 “선배님들 한 번에 가세요”라고 힘줘 말했다.
용산구 용산고 앞에서도 배문고 응원단 15명이 ‘수능 대박 기원’ 현수막을 펼치고 연신 “선배님들 화이팅”을 외쳤다. 한세현·조성진(17·배문고 2학년)군은 “동성고와 용산철도고 등 다른 곳에도 응원팀이 나갔다”며 “실수하지 않고 실력 다 보여주고 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년 기온을 3∼8도 웃도는 포근한 날씨에 수험생들 옷차림은 가벼웠다. 후드티나 후드집업을 입은 수험생들이 많았고, 외투를 한 손에 걸치고 반바지를 입은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학부모들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를 꼭 안아줬다.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떨지 마. 잘하고 와”, “끝나면 연락해. 맛있는 거 먹자”고 말했다. 자녀가 정문을 지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곤 눈을 감고 기도하기도 했다.
개포고 앞에서 만난 권윤정(51)씨는 “여태까지 온 것만 해도 너무 고맙고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며 “긴장하지 말고 늘 보던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불고기, 겉절이를 넣었다는 권씨는 “김치는 꼭 넣어달라고 했다”며 “예민한 편이어서 주말마다 수능도시락 연습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순희(54)씨도 “애가 고기를 좋아하는데 속이 불편할 수 있어서 몇주 전부터 고기를 줄였다”며 “40을 공부했는데 60을 기대하면 안 된다. 아는 것만 하고 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용산고 앞에서 만난 송모(48)씨도 “딸이 들어갈 땐 담담했는데 지금은 울컥한다”며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힐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장모(52)씨는 “요행 바라지 말고 정직하게 시험 치고 나오면 된다. 주눅 들 필요 없다”며 “저녁에 아들이 먹고 싶은 메뉴로 외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로구 경복고에 수능을 보러 온 송준민(18)군은 “수능 전엔 심란했는데 막상 오니 차분해졌다”며 “12년 동안 준비한 거 긴장하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모(18)군은 “점심에 속이 안 좋을까 봐 삼계탕 사 왔다”라면서 부모님에게 “19년 동안 뒷바라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꼭 붙어서 좋은 결과 보여드릴게요”라고 전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실 마감 시간에 가까워져서 헐레벌떡 들어가는 수험생들이 보였다. 오전 8시가 넘어 순찰차에서 내린 한 수험생은 용산고로 뛰어갔고, 오전 8시 개포고 앞에선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은 수험생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차를 몰고 온 수험생 아버지는 ‘갔다 오기엔 너무 늦는다’고 걱정했다. 집에서 개포고까지 20분가량 걸리는데 경찰은 이송지원을 할 수 있다고 알렸고, 신분증을 갖고 나온 어머니를 도곡지구대 순찰차가 태워 13분쯤 개포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닫힌 문 사이로 수험생 신분증을 시험 관계자에게 건네줄 수 있었다.
이번 수능에는 전년도보다 1만8082명 늘어난 52만2670명이 지원했다. 1교시 국어영역은 오전 8시40분에 시작했고, 5교시 제2외국어·한문영역은 오후 5시45분(일반 수험생 기준)에 끝난다.
이번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였다. 곽의영 시인의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에 나온다. 2024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에서 인용한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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