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구가 만추로 물들어가는 새만금에도 잘 어울릴 법한 주말이다.
우리는 대개 어떤 사물을 볼 때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 보곤 한다. 시에서 깊고 예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자세히’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그리고 어느 것을 사랑하려면 ‘오래’라는 두 번째의 말이 들어온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너’라는 글자가 그렇다. 많은 의미를 느끼게 한다.
16일 새마금개발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새만금 방문객들의 평균 체류 시간은 4시간 정도다. 새만금을 자세히, 또 오래 보지는 못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새만금 방문객 집계는 1995년 새만금 전시관을 개관하면서 시작됐다. 첫해 7만7537명이 찾은 이후 가장 많은 방문객은 방조제가 완전 개통된 2010년으로, 861만1565명을 기록했다. 새만금에 인접한 ‘천혜의 섬’ 고군산군도가 2017년 연륙교로 개통되면서 여객선 대신 방조제에서 자동차로 손쉽게 오가게 돼 2019년에는 614만612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방문객의 발길이 잠시 주춤하다 지금은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만추의 새만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새만금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는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길 추천한다.
최근 새만금에는 겨울을 앞두고 일찌감치 철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하늘을 날며 ‘서로 힘내라’는 듯 울어대는 기러기 무리와 만날 수 있다. 특히,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에서 이들이 펼치는 군무는 장관이다.
드넓게 펼쳐진 농지에서는, 아침 일찍 찾으면 색다른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기온 차이가 만들어 낸 안개에 휩싸인 신비로운 풍경과 갖가지 들풀, 풀꽃에 매달린 영롱한 아침 이슬은 짧은 순간에만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낮에는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수면은 가마우지들의 천국이다. 새만금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가마우지 무리가 줄을 지어 수면을 스치듯 바짝 붙어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예외다. 그 옆으로 백로와 갈매기까지 날면서 푸른 도화지에 흑백의 정점을 찍는다.
새만금 중심부를 동서, 또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중간 휴게소에 잠시 머물며 피부를 시원하게 마사지하듯 불어오는 바람결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보는 것도 좋다. 그것에서 멀리, 홀로 우뚝 서 있는 지평선의 버드나무와 붉은 칠면초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아무리 오래 봐도 물리지 않는다.
가을, 새만금 백미는 ‘선유 8경’ 중 하나인 월령단풍이다. 신시도 199봉 동쪽 사면으로 펼쳐지는 단풍은 백두준령을 따라 금강산과 설악산, 태백산과 소백산, 덕유산과 지리산 준령을 타고 내려오는 단풍이다. 내장산 단풍길과 같다고 해 선유 8경 마지막으로 월령단풍이 선정됐다. 푸른 바다에 비치는 월령단풍의 잔영을 한 번 보면 1년 내내 애가 타고 두 번 보면 한 해 동안 새만금에 푹 빠지게 한다.
단풍 구경 뒤 잠시 기다리면 멀찍이 마주할 수 있는 게 고군산군도의 해넘이다. 가을 해넘이는 유독 붉게 물든다. 섬과 섬 사이 하늘과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석양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다. 수평선 너머도 선명하게 해를 만들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조물주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산 정상에서, 해수욕장에서, 다리에서, 섬에서 느끼는 낙조는 새만금의 백미다.
그동안 새만금의 겉만 봤다면 올 가을엔 오래도록 자세히 볼 것을 권한다. 자세히 보면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이 방문객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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