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름반도 탈환은 포기한 것 아닌가’ 관측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해 주목된다. 그간 종전을 강력히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25년 초 취임할 예정임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젤렌스키가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의 포기까지 결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이날 우크라이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진행자와 대담을 나눴다. 그는 “우리(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이 2025년 외교적 수단을 통해 끝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차기 대통령이 될 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 여러 차례 “취임 후 신속히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한 점을 상기시킨 젤렌스키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전쟁 종식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트럼프가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날은 2025년 1월 20일이다. 그때까지 당선인 신분인 트럼프는 어떤 외국 정상과도 만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젤렌스키는 “대통령 취임 전 (트럼프와) 만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며 “(트럼프 측에) 특사를 보내거나 보좌관을 통해 대화하는 대신 내가 (트럼프) 본인과 직접 접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선인 신분의 트럼프와 대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화 통화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의 진군 속도가 빨라지며 상당한 면적의 영토를 러시아군에게 빼앗긴 사실이 전해진 바 있다. 젤렌스키도 우크라이나가 처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여소야대의 미국 연방의회 하원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붙들면서 군대를 무장시키고 장비를 보급하는 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무기 제공을 재개한 뒤 새롭게 무장하고 훈련을 받은 부대가 전선에 투입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쟁을 끝내야 하는 시점을 2025년으로 못박았으면서 종전의 조건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간 젤렌스키는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영토는 물론 10년 전인 2014년 러시아가 강탈한 크름(크림)반도까지 모두 되찾는 것이 전쟁의 목표라고 누누히 밝혀왔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최근 미국 등 서방 주요국 정부에 제시한 ‘필승 전략’에서 크름반도 탈환은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 때문에 이번 젤렌스키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영토 일부는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 주재 자국 대표부를 통해 “앞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평화 협상을 주선하고 나선다면 응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표부는 “지상(地上)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 러시아가 이제껏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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