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가입 포기, 중립국 될 것 등도 요구”
우크라에 너무 가혹… 성사 여부 불투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협상에 돌입할 의향이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다만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등 우크라이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요구하고 있어 트럼프가 나선다고 해도 휴전 성사 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크레믈궁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이 기존에 제시한 조건들의 이행을 전제로 트럼프와 휴전 협상을 하는 데 열려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10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당선인 신분의 트럼프가 푸틴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확전하지 말라’는 경고와 더불어 휴전 논의에 관한 제안을 했다고 전해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크레믈궁은 WP의 기사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푸틴이 내건 조건은 너무 가혹해 우크라이나로선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다. 먼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점령한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10년 전인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강탈해 점유하고 있는 크름(크림)반도는 아예 논의 대상조차 아니다. 러시아는 대신 우크라이나 북부와 남부의 소규모 점령지에서는 자국 군대를 철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집단안보 기구 나토의 회원국이 되려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국으로 남아야 한다는 조건도 눈에 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군대의 병력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도 휴전 협상에서 논의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 모두가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자국의 외교·안보 주권 일부를 스스로 내려놓는 굴욕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8%가량을 점령한 러시아는 점점 더 빠르게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진격하고 있다. 오죽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중에 외교적 수단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 스스로 전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전쟁 대신 외교에 의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미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내가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선 함구로 일관했다. 지금도 트럼프의 평화 구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트럼프가 푸틴과 친하다는 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점 등을 토대로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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